구학서 사장이 올해 초 윤리경영 임원 워크숍에서 틀어준 영상 자료엔 사람이 호랑이 등에 올라 타고 있는 애니메이션 장면이 나온다. 윤리경영을 도입한 신세계의 처지가 그와 다를 바 없다는 의미다. "호랑이 등에 타면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계속해서 달리거나 아니면 떨어져서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지요." 구 사장은 임원들에게 윤리경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강조한다. 어렵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이 정도에서 만족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실 신세계는 지난 4년동안 윤리경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윤리경영을 도입한 99년 2조2천6백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6조2천3백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2백22억원에서 2천4백62억원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윤리경영상도 받았다. 신세계는 반부패국민연대의 기업윤리경영 최우수회사상(2001년)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경제정의 기업상 특별상(2003년)을 받았고 구 사장은 올해 납세의 날에 유통회사 대표로는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할인점이 56개까지 늘어난게 실적 향상의 큰 원인이지만 윤리경영과 협력회사의 협조가 없었다면 이 정도까지는 못했을 겁니다"(기업윤리실천사무국). 실적만으로 보면 여기서 윤리경영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족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바뀌어 있다. "고객들이나 협력회사들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와 믿음이 이미 너무 높습니다." 구 사장을 비롯한 신세계 임직원들은 고객이나 협력회사들로부터 '윤리경영한다면서 이렇게 하셔도 되는 겁니까'라는 말을 듣는 게 가장 두렵다고 입을 모은다. 외부의 높아진 기대를 저버릴 때 입게 될 이미지 훼손이나 신뢰도 손상은 상상하기조차 싫다는 것이다. 구 사장은 '양날의 칼'처럼 윤리경영이 제대로 되면 '무기'가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올들어 신세계는 윤리경영을 모든 협력회사로 확산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무국은 협력회사에 윤리경영을 전파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지난 6월 12,13일엔 백화점과 할인점부문 협력회사 최고경영자 임원 3백여명을 초청,조선호텔에서 '협력회사 최고경영자 윤리경영 세미나'를 열었다. 구 사장은 이 자리에서 "윤리경영은 신세계의 노력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윤리경영을 도입하는 협력회사에는 노하우를 적극 전수하겠다"며 지원 의지를 밝혔다. 세미나에 참석한 협력회사들도 대부분 구 사장의 의지에 동감을 표시했다. 모 협력회사 사장은 "신세계를 이해하게 됐다.윤리경영에 대한 확고한 방향을 이젠 믿게 됐다"는 요지의 메일을 구 사장에게 보내오기도 했다고 한다. "윤리경영은 해당 회사는 물론 관계를 맺고 있는 협력회사,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윤리의식이 밑바탕돼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그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업체와 거래하는 신세계 같은 유통업체가 윤리경영을 전파하는데 유리하지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지 4년째인 구 사장. 그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 등에 함께 타길 기대하며 오늘도 달리고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