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4 03:42
수정2006.04.04 03:47
국내 여성 법조인 1호인 이태영 변호사는 1952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는데도 판·검사 임용이 되지 않았다.
"여자가 어디 감히 판·검사라고…"하는 멸시가 짙게 깔려있었고 게다가 남편(정일형 박사)이 야당 정치인이어서 정치적인 입김도 작용했던 것 같다.
그후 금남(禁男)의 벽을 뚫고 재조(在曹)에 처음 입문한 여성은 54년 황윤석 판사였다.
검사직으로의 진출은 이보다 훨씬 늦어져 82년에야 비로소 여검사가 탄생했다.
여성 고급 두뇌들이 몰려드는 법조계 상황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사법고시 여성 합격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 지난해의 경우 2백39명으로 그 비율도 20%를 훌쩍 넘어섰다.
여성들의 성적 또한 뛰어나 올해 판사로 임용된 1백10명 중 절반에 가까운 54명이 여성이었다.
임용판사라 해도 성적순에 따라 근무지가 정해지는데 상위권이 몰리는 서울지법에는 34명 중 무려 24명이 여성이어서 법조계의 변화를 실감케 했다.
법조계에서의 여성파워는 이제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판·검사 변호사 등 여성 법조인은 7백여명에 이르고 주요 로펌들의 스카우트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담당하는 업무영역도 종전에는 이혼이나 양육 등 가사사건이 주였으나 이제는 금융 증권 조세 기업인수·합병(M&A) 지식재산권 등 전문적이고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사회의 어느 분야보다도 여성 진출이 가장 돋보이고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관 제청 파동 속에서,대법원이 엊그제 전효숙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여성 첫 헌법재판관에 임명한 것은 이래저래 눈길을 끈다. 선배기수를 제치고 다소 빠르게 진출했다는 점이 보수적인 법조계에서는 다소 의외일 수 있겠으나,여성의 권익보호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고려할만한 일이다.
수없이 발생하는 여성 관련 문제들을 남성의 시각보다는 여성이 더욱 잘 알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와 함께 최고의 사법기관인 대법원도 당장은 어렵겠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여성 대법관을 임명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양성(兩性)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