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시민의 명예 .. 최수권 <연세디지털미디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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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시에 수천억원을 거둬들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그에 합당한 벌금을 추징받은 전직 대통령의 재산이 인구에 회자된 바 있다.
자신의 전 재산이 30여만원에 불과하며 가족 또한 빈털터리라는 주장 때문이었다.
이 주장이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마치 한편의 우화처럼 여긴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만약 사실이라면 권력을 등에 업고 불법적인 축재를 했다는 전력에도 불구하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비록 한때는 이래저래 돈에 눈이 어두웠지만 개운치 않은 물질을 털어버린 적수공권(赤手空拳)의 홀가분한 처신이라면 공감이나 동정 비슷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 재산이 30여만원이라는 강변이 실소와 분노를 야기하는 것은 그의 행보 때문이다.
골프를 즐기는 것은 물론 1백만원대를 호가하는 헌수(獻壽)를 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 때문이다.
이 나라와 사회의 원로가 돼야 하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명예로운 신분이,어줍잖은 말 몇 마디로 희석되는 것을 본인이 알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위와 같은 행태는 한때의 가십 같은 화제일 수도 있지만,받아들여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가치관의 혼란이 야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마음먹기다.
처지와 형편에 합당한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는 자세의 부족이다.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이 땅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소외당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의식주,그리고 인간관계가 원만하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위에 합당한 명예가 아니겠는가.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고,그 명예를 지키기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처신을 할 줄 아는 지도자가 그리워진다.
그런 지도자가 있어 사회의 여러 문제에 적절한 훈수를 할 줄도 알고,그 훈수에 여론이 공감하는 세태였으면 하는 것이다.
날만 세면 1면의 톱기사에 놀라 기절할 지경이다.
지도자들이여,'내가 하는 일에 어떤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가'를 인식하고,진정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기여하는 자세로 솔선할 때 명예나 존경은 이뤄질 것이다.
그런 사회의 명예는 굳이 지도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어떤 처지의 시민이든 명예를 앞세울 줄 안다면 오늘의 사회상은 훨씬 더 밝고 소망스럽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