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南美化 더이상은 안돼..朴孝鍾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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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제는 경기침체로 암울한데,그렇다고 신바람나는 새로운 정치가 펼쳐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방에서 갖가지 이유로 분노와 항의의 집단행동이 벌어지는 등 사회는 사회대로 불안과 카오스의 상태를 노정하고 있다.
혹시 토마스 홉스가 말한 '늑대와 늑대와의 투쟁'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이것이 유감스럽게도 참여정부 출범 6개월의 현주소이다.
물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모든 무질서와 갈등이 참여정부의 귀책사유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실망도 큰 것이다.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를 찬성한 사람 못지않게 반대한 사람도 '낡은 한국의 종언'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참여정부 출범 1백일이 지나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을 때 정부 관계자들은 시스템이 갖추어질 때까지 참아달라고 했다.
당연히 모든 일에는 준비기간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어서 갖 출범한 신정부에 대한 성급한 주문은 마치 갖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옥동자를 바라는 것처럼 무리한 기대일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상황이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전망이 서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과 갈등이 선진정치와 선진경제로 가는데 불가피한 진통이라고 생각된다면 참고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렇다는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의 남미 여러 국가들처럼 감성과 무절제의 포퓰리즘으로 치닫고 있는 과정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겐 정당정치도 없고 여야정치도 없으며 다만 '말의 성찬'만 있을 뿐이다.
'토론공화국'이라서 그런 것인가,아니면 내년 총선까지 기다려 "새술을 새부대에" 담으려고 하기 때문인가.
청와대는 당정분리를 내세워 여당과의 조정관계 설정에도 관심이 없을 뿐더러 다수당인 야당과는 냉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아예 청와대는 정치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국정을 챙기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입법부와의 관계를 원만히 하지 않은 채 대통령과 행정부의 각료들만으로 1박2일의 국정토론을 벌인다고 해서 행정 시스템이 원만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지난 5월에 이어 두 번씩이나 발생하는 물류대란이 그 전형적 사례가 아닌가.
지금 가장 심각한 것은 각 영역에서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당안에서 신당문제로 몇 달동안 지루한 다툼이 계속되고 있는가 하면 보수와 진보세력은 국경일마다 서로간에 적대적인 집회를 갖고 있다.
여기에다 청와대는 언론과 '건강한 긴장관계'가 아닌 '위험한 긴장관계'를 고집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상황에서 청와대가 당사자가 되어 있어 해결은 커녕 분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청와대가 갈등의 진원지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리더십이 진가를 발휘할 수 없고 정부의 국정비전이 설득력을 가질리 없다.
아무리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표방하고 2만달러 시대를 소리 높여 외쳐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실상 참여정부 리더십의 문제는 국정을 선거운동의 현장으로 오해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선거운동기간동안 '내사람'과 '내편'을 찾고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전략이다.
또한 때로는 상대에 따라 대립각도 세우고 험한 말을 함으로써 동정표를 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에서 승리해 국정을 담당했다면 다수의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관용의 정부가 되어야 한다.
선거때 반대했다고 해서 두고두고 마음에 담고 적대세력으로 치부하고 있다면 '대장부'의 정부가 아니라 '졸장부'의 정부일 뿐이다.
'노무현 후보'를 반대했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국민은 없다고 확신한다.
대통령의 성공은 대한민국의 명운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부디 참여정부는 인재의 풀을 넓히고 능력과 효율의 개념을 살려 386의 정부가 아니라 5060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정부임을 입증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