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부품업체인 남신시스텍의 이신주 사장은 지난 7월2일 가전제품업체인 J사에 내열선을 납품했으나 6주가 지나도록 대금을 받지 못했다. 검사가 필요하다며 물품인수증만 끊어준 뒤 감감무소식이었다. 이 사장은 이달 중순 대금을 주겠다는 전화를 받고 해당업체 구매부서로 달려갔다. 그러나 결제대금은 현금이 아니라 어음이었다. 그것도 결제 기일이 오는 12월15일로 되어 있는…. 이 사장은 해당 구매과장을 만나 "한여름에 납품했는데 눈 내릴 때 돈을 주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다. 그러나 구매과장은 "우리도 어렵다"며 "어음이 싫다면 거래를 끊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이 사장은 전했다. 제품 납품 후 44일 만에 4개월짜리 어음(총 회수기일 1백66일)을 받아든 이 사장은 거래은행을 찾아갔으나 할인한도 초과로 현금화할 수 없었다. 제2금융권에서는 할인금액의 1백10%에 해당하는 담보를 제공하라는 바람에 뒤돌아서고 말았다. 서울 역삼동 사채업체를 찾아갔더니 인보증을 세우는 조건으로 연 30%로 할인해 주겠다고 제안해 손해를 감수하고 이를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장기어음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자금난, 연쇄부도 등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늘고 있다. 기협중앙회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 어음 총 회수기일(수취기일+결제기일)이 1백31.6일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작년 1ㆍ4분기 1백20.1일에서 불과 1년여 만에 11.5일이나 늘어난 것이다. 이는 경기침체가 계속되자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일부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장기어음 발행을 통해 부품을 구매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제기간이 3개월이 넘는 장기어음이 수두룩하고 6개월짜리 어음도 공공연히 발행되고 있다. 이런 어음을 받았다가 연쇄부도에 휩싸이는 경우도 늘고 있다. 올들어 경기 시화공단에 있는 세한테크, 청원의 보성프라스틱, 목포의 성우기계 등이 연쇄부도로 쓰러졌다. 장기어음 발행이 늘면서 서울 역삼동 명동 시흥 등에 있는 사채시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들은 연리 30% 이상으로 어음을 할인해 주면서 보증이나 담보도 요구하고 있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