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문명에 상처받는 현대인의 모습을 섬세한 시어로 표현해온 시인 박형준(37)이 첫 산문집 '저녁의 무늬'(현대문학)를 펴냈다. 등단한 지 13년만에 내놓은 이번 산문집에서 시인은 유년시절의 추억과 시인이 된 후 느낀 삶의 단상들을 때로는 고통스럽게 때로는 희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방바닥에 어지러이 널려져 있는 책과 이곳저곳에서 사 모은 가지각색의 색깔을 들인 필기구들,먹다 남은 식빵과 반쯤 남은 물잔,그리고 수북이 쌓여 있는 담배꽁초들.이곳에 과연 내가 열망했던 세계의 뒷문이라도 그 삐걱임 소리를 낸 적이 있었던가'('저녁의 무늬' 중)에는 행복해지기 위해 시인이 되었던 그가 현실생활에서 느끼는 자기연민과 자괴감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현실은 시인에게 절망을 강요하지만 시인은 이에 굴하지 않는다. '첫 산문집을 묶으면서 내가 새삼 발견하는 것은 삶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책은 희망의 '무늬'를 촘촘히 깁고 있다. 그 무늬는 대개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사소한 것들 속에서 발견된다. 그것들은 빈방 구멍 틈과 같은 비어 있는 공간들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불안'이나 '공허함'을 상징하는 이런 것들이 시인에게는 상상력이 움트는 공간이자 외부로부터 침범당하지 않는 안전구역이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자신의 빈방에서 혼자 지내는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는 '빈방'을 '탯줄'삼아 세상을 바라본다. 그에게 '빈방'은 불안과 공허가 아니라 충일하게 부풀어 오르는 언어의 '사원'이 되는 셈이다. 이윤학 시인은 이에 대해 "그는 앞다투어 지나가는 사람의 무리에서 멀찌감치 비켜나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다. 그는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게 그가 가진 천성이고 그의 글이 가진 미학이다. 그의 마음은 비애로 가득차 있지만 그 비애는 그가 가진 거울을 통해 아름다운 무늬로 다시 태어난다. 나는 그가 보여주는 '저녁의 무늬'에서 오래전에 버린 희망의 고리들을 주워 담는다"고 말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