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카슈랑스시대 개막] 단골 은행서 보험 가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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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에 사는 주부 박은영씨는 9월10일 만기가 된 정기예금 3천만원을 찾기 위해 은행을 방문한다.
딱히 쓸 곳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금리 탓에 정기예금에 계속 묻어 두기가 찝찝했기 때문이다.
목돈을 새롭게 굴릴 방법이 궁금했는데, 창구의 은행원은 "9월3일부터 은행들도 보험상품을 판매하게 됐다"고 얘기한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보험 창구에 가서 한 번 상담해 볼 것"을 권유한다.
보험 데스크의 은행 직원은 "일시납 연금보험이나 변액연금보험의 경우 7년 이상 유지하면 비과세 혜택까지 주어진다"며 "한번 가입해 보라"고 조언한다.
"저축 기능에다 보험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7년은 너무 길지 않을까' 하며 순간 망설이는 박씨.
"은행에서 가입하는 보험상품은 기존 보험에 비해 5%가량 저렴하다"는 은행 직원의 얘기를 더 듣는 순간 보험 가입을 결정한다.
목돈을 좀 더 크게 불려보자는 심산에 투자실적에 따라 지급 보험금 규모가 달라지는 변액연금을 선택한다.
은행, 증권사, 상호저축은행, 신용카드사에서도 보험 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 방카슈랑스가 시작된다.
이 제도가 허용되는 것은 8월30일이지만 은행들은 9월3일께부터 본격적으로 보험 상품을 취급한다.
이에 따라 박씨와 같은 '선택'을 하는 금융소비자들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방카슈랑스(Bancassurance)는 은행(bank)과 보험(assurance)의 합성어.
금융권간 칸막이를 허무는 대표적인 제도로 불리고 있다.
유럽 금융시장에서는 1970∼80년대부터 방카슈랑스를 통한 보험 판매가 활성화됐다.
한국에서는 이제까지 보험설계사를 통하거나 전화 또는 인터넷 등을 이용해야만 보험에 들 수 있었다.
사탕을 나눠주는 '보험 아줌마'에서 노트북을 들고 재정 컨설팅을 해주는 '재무설계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지금껏 설계사를 통한 보험 가입에 너무 익숙해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금융거래의 비용(cost)을 절감(down)하고 편의성을 높인다(one-stop banking)'는 이유를 내걸고 빠른 속도로 금융 겸업화를 진행해 왔다.
이젠 한국 금융시장도 국제 금융계의 이 같은 흐름을 무시할 수 없는 단계까지 성장했다.
게다가 인터넷의 발전 등으로 금융 소비자들도 조금 더 편한 금융거래를 원하게 됐다.
금융상품들이 전통적인 형태와 성격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금융권 상품의 장점을 적극 수용해 가는 이른바 '금융상품의 퓨전(fusion)화' 경향도 소비자들의 금융 소비 행태를 바꾸고 있다.
방카슈랑스는 이처럼 변화한 금융문화를 자양분 삼아 한국 시장에서 '착근'을 시도하고 있다.
어쨌든 방카슈랑스가 실시되면 은행은 고객에게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창구 한 곳에서 제공하는 원스톱 뱅킹이 가능해진다.
보험사는 판매채널을 확대할 수 있는 장점을 갖게 된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느 금융회사에서나 싸게 보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보험 소비자들은 앞으로 설계사를 만나지 않더라도 은행(국책은행 포함), 증권사, 상호저축은행, 신용카드사 등 보험사와 상품 판매 제휴를 맺은 1백50여개 금융회사를 찾아가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우선 연금보험과 교육보험, 장기저축성보험, 신용생명보험, 주택화재보험, 개인상해보험 등을 접할 수 있다.
종신보험 등 보장성 보험이나 자동차보험의 경우는 2005년 4월부터 판매가 허용되는 탓에 방카슈랑스 초창기에는 은행 창구에서 가입할 수 없다.
은행들은 연금보험의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은퇴생활자나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들을 중심으로 일시납 연금 가입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은행에서 대출받은 사람이 사망하면 보험사가 대신 대출금을 갚아주는 신용생명보험도 소비자들에게 관심을 끌 것으로 전망한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보험상품은 보험설계사가 판매하는 상품보다 보험료가 싸고 단순한게 특징이다.
보험료 인하 폭은 적게는 2%, 크게는 10%에 이를 것이지만 중소형 보험사 상품일수록 더 저렴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보험료가 싸다고 해서 쉽게 선택해 가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은행은 보험상품을 팔 뿐이지 보험사고시 보험금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보험금은 해당 상품을 개발한 보험회사에서 지급한다.
이를테면 은행은 보험대리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험에 가입할 때는 보험사의 재무능력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보험 상품은 장기가 속성인 관계로 '몇십년 후에도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 회사의 상품인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보험료도 저렴하고 그 상품을 만든 회사도 우량하다면 금상첨화일 터이지만.
방카슈랑스 이후 소비자들의 선택이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