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기적에서 배운다] (2) '사활건 외자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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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윌튼 플레이스가(街)에 위치한 정부청사 '윌튼 파크 하우스'.
외국기업 유치업무를 관장하는 IDA아일랜드(아일랜드산업개발청) 등 정부부처가 들어 있는 이 건물에는 뜻밖에도 아일랜드 유수의 로펌 휘트니무어앤켈러와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간판이 나란히 붙어 있다.
민간기업이 정부 청사에 입주해 있는 만큼 각종 특혜시비가 일어날 법도 하지만 아일랜드 정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인허가에서부터 법률 및 경영자문 서비스까지 외국인 투자관련 업무를 한 건물 내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배려, 더 많은 외국기업을 유치하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다.
김장한 KOTRA 더블린 무역관장은 "아일랜드 정부가 외국기업 유치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1987년 사회연대협약의 토대 위에서 '국가재건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한 아일랜드는 파탄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아야만 했다.
하지만 중공업 기반이 전혀 없던 터라 새로운 산업지도를 그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는 구직을 위한 해외이민이 극에 달했던 때.
아일랜드 정부는 무엇보다도 일자리 창출이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다국적 기업의 유치에 적극 나섰다.
기업통상고용부 기업지원팀의 키에란 그레이스씨는 "농업 이외엔 변변한 산업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으며 국민들도 모두 이에 공감, 외자유치 정책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후발주자로서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자유치에도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먼저 법인세를 10%로 낮췄다(올해 12.5%로 인상).
영국과 프랑스 등 인접 서유럽 국가들의 법인세가 30∼40%에 달하는 것에 비춰볼 때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또 주요국가와 이중과세방지 협약을 체결해 기업이 법인세를 이중으로 내지 않도록 했으며 공장 설비와 건물 토지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의 25∼35%를 정부 보조금으로 지원해 주었다.
유럽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로서,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gateway to Europe)'이란 이미지를 앞세워 대대적인 해외홍보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IDA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IDA는 건축개발 승인과 환경통제 허가를 제외한 전권을 갖고 외국기업들이 공장입지 선정부터 회사 등록까지 모든 서비스를 한 곳에서 받도록 지원했다.
아일랜드는 이같은 조건을 앞세워 지난 87년 이후 꾸준히 외국기업을 유치했다.
현재 아일랜드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은 1천2백여개.이들 기업에 고용된 인력은 모두 13만4천여명에 달한다.
아일랜드 경제에서 차지하는 외국기업의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출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기업을 빼놓고는 아일랜드 경제를 논할 수 없을 정도다.
아일랜드는 중공업 기반이 약했던 만큼 금융회사와 IT분야 기업을 유치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더블린 시내 동쪽 커스톰 하우스 둑에 위치한 더블린국제금융센터(IFSC).
15만㎡ 규모의 부지에 건립된 이 초현대식 종합금융센터에는 메릴린치 씨티뱅크 스미토모은행 AIG 등 전 세계 약 4백30여개의 금융기관들이 입주해 있다.
아일랜드 중앙은행에 따르면 IFSC에서 조성된 펀드는 총 3천3백77건이고 이들 펀드의 순수자산가치는 3천억유로에 달한다.
IDA측은 "세계 유수 금융기관을 한 곳에 입주시켜 IFSC 자체가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 있는 경쟁력을 지닐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는데 현재 그 목표를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IFSC에는 사무실은 물론이고 호텔 레스토랑 공연장까지 갖춰 최상의 입지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IT기업의 개발 및 제조기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IBM 인텔 델 등 3백여개 다국적 IT회사들이 진출해있어 '유럽의 실리콘 밸리'로 불릴 정도다.
실제로 유럽에서 팔리는 컴퓨터 4대중 1대는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다.
소프트웨어는 무려 60%가 아일랜드산이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는 미국이 아닌 더블린의 유럽센터에서 자바 등 전략 품목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의 MIT공대는 더블린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지었다.
정부가 외국기업 유치에 워낙 적극적이고, 외국기업들의 기여도가 높다보니 아일랜드에선 외국기업과 토종 기업간의 차별이 전혀 없다.
정부에 대한 목소리도 똑같이 낸다.
외국기업이 아일랜드 기업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은 IBM 현지법인 사장이 재계를 대표하는 아일랜드경제인연합회(IBEC) 회장을 맡았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IBEC 회장은 아일랜드 토종기업과 외국기업 대표가 번갈아 가며 맡는 것으로 정착돼가고 있다.
데이비드 크로건 IBEC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외국기업은 이미 아일랜드에서 중요한 경제 주체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토종기업과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며 "오히려 외국기업의 목소리가 정책입안에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블린=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