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자재시장이 투기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라크전쟁 직전과 비슷한 양상이다. 지정학적 불안에다 경기회복 이상기후 등이 맞물리면서 원자재 시세가 강세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이상 급등이란 시각이 강하다. CRB국제상품가격지수가 한달새 5%이상 급등, 지난 2월말이후 가장 높은 243선에 올라선 것은 이상급등의 대표적 증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일 "일부 원자재시장이 투기장으로 변하고 있다"며 세계 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했다. 경기회복기에는 원자재가격이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금의 상승세는 정상궤도에서 이탈한 '이상 급등'이라는 진단이다. ◆ 투기화되고 있는 원자재시장 =지난 주말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는 원자재시장이 투기장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발생했다. 구리 등 비철금속들이 주로 거래되는 이 곳의 회원권값이 사상 최고가인 22만달러에 팔린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국제 투기자금이 원자재시장으로 몰리고 있다는 증거"라며 "최근 미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국채가격이 떨어지자 국제 핫머니(단기자본)가 상품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COMEX의 지주회사인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로버트 콜린스 사장도 "최근 비철금속과 원유 등 원자재 거래량이 연초에 비해 29% 급증했다"며 투기자금의 상품시장 유입을 최대 요인으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세계 국채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한 지난 5월부터 투기자금의 원자재시장 유입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확한 금액을 측정하기는 불가능하지만,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한 투기세력이 50억달러 이상의 핫머니를 금 원유 비철금속시장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투기자금의 유입과 더불어 국제유가는 이라크 내 폭탄테러, 나이지리아와 베네수엘라의 파업 및 정정불안 등이 겹치면서 배럴당 30달러대의 고유가 상태에서 벗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 핫머니의 최대 투기대상이 된 귀금속시장의 국제 금값(현물)은 현재 온스당 3백76달러로 지난 한 달간 30달러 이상(9%) 급등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대륙을 휩쓴 폭염사태로 유럽의 농산물 생산이 큰 타격을 받아 밀 등 국제 곡물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폭염으로 올해 이 지역 곡물 생산량이 평년에 비해 11%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영향으로 밀 옥수수 콩 등 국제 곡물가격은 최근 한 달 사이에 6∼14%씩 올랐다. ◆ 경기회복 저해 우려 =원자재 가격 급등세는 이제 막 회복되기 시작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바클레이즈 캐피털은행의 원자재시장 분석책임자 케빈 노리시는 특히 배럴당 30달러대의 고유가는 세계 경제 회복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도 "배럴당 30달러 이상의 고유가가 15개월 넘게 지속되면 미국의 올 경제성장률이 유가 안정시에 비해 0.4%포인트가량 낮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구리 알루미늄 등 비철금속가격 및 유가 상승은 기업들의 생산비를 올려 '기업실적 개선 둔화→증시상승세 제한→경기회복 지연'의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훈 기자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