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유럽상공회의소 회장.바이엘코리아 사장 marcos.gomez.mg@bayer.co.kr > 1999년6월 호기심과 기대를 품고 김포공항에 내렸다. 아시아지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던 나와 아내에게 서울 생활이란 흥미로운 도전이었으며,새로운 경험의 시작이었다. 서울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된 어느 토요일,화가인 아내를 위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보자며 의기양양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미술관에 거의 도착했다고 짐작되었을때 '서울대공원-직진'이란 도로표지판을 발견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미술관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달린 후 도로표시판에서 '안산'이란 낯선 이름을 봤다. 방향을 잃은 채 달리기를 한참,'서울방향'의 표지판이 나타났고 얼마 후 KBS라는 사인을 보게 됐다. 여의도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타워를 등대 삼아 겨우겨우 호텔로 돌아왔다. 훗날 우리회사의 공장이 안산에 있다는 사실에 나는 한참을 웃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새로웠던 서울 생활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익숙해져 갔다. 서울 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는 너무나 좋은 한국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는데,그들은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면 기꺼이 손길을 내밀어줬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서울의 조그만 식당이 있다. 나와 아내가 처음 그 식당에 들어섰을 때 우리를 바라보던 식당주인의 어색한 몸짓을 아직도 기억한다. 모든 게 한국어로 돼 있던 식당에서 벽에 써있는 숫자가 음식값을 의미하리라 굳게 믿으면서 나는 6천을,내 아내는 7천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잠시 후 종업원중 한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자기를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참으로 유쾌한 경험이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서울'이란 어떤 곳인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인간적인 곳이며,전통과 문화가 숨쉬는 곳이다. 무질서한 듯하면서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느덧 완벽한(?) 서울시민이 돼버린 나는 운전자와 통행인 모두의 의견이 반영된 교통법규가 나오기를,쓰레기 수거봉투 구입과 폐기물 수거비용 납부가 좀더 간편해지기를,그리고 아내가 즐겨찾는 동대문과 남대문지역에 깨끗하고 편리한 화장실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뤄진다면 그곳은 더이상 서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긴 내가 좋아하는 서울의 모습은 다른 어떤 변화된 모습도 아닌 바로 지금 이대로의 모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