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실 입구 바닥에 불법(佛法)을 상징하는 법륜대를 딛고 선 귀왕(鬼王)의 모습이 보인다. 이로부터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아수라 천상 등 죽은 뒤 인간이 끊임없이 윤회할 여섯가지 길(六道)을 안내하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2일 개막한 '영혼의 여정-조선시대 불교회화와의 만남' 특별전이다. 이번 특별전의 소재는 지옥과 극락에 관한 이야기다. 죽음에 임한 사람이 저승사자를 만나는 데서부터 업보에 따라 죄를 심판받고 극락으로 인도되는 과정을 40여점의 불화와 불교 장엄구들을 통해 보여준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시대였던 조선의 불교적 내세관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영혼의 여정'은 먼저 저승사자들을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이승을 떠나는 날 염라대왕의 장부를 손에 든 저승사자들이 백마나 흑마를 타고 나타난다. 이들은 죽은 이의 집에 가서 염라왕의 명령을 전함과 동시에 망자(亡者)의 공덕을 조사한다. 죽은 자의 죄가 적힌 두루마리 장부를 염라대왕에게 전달하는 직부사자,망자의 집에 파견돼 그를 감시하고 보호하는 감재사자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 감재사자는 창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저승사자에게 잡혀가면 죄를 심판받게 된다. 그 첫번째 과정이 업경대(業鏡臺·지옥의 염라대왕이 인간의 죄를 비춰보는 거울)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염라대왕은 죄인이 스스로 죄를 털어놓도록 해 업경대에 더 이상의 죄가 비치지 않으면 심문을 끝낸다. 다음 과정은 이렇게 밝혀낸 죄의 경중을 가리는 것.업칭(業秤)이라는 저울에 죄목이 적힌 두루마리를 달아 죄인이 가야 할 지옥을 정하게 된다. 불화에는 목에 칼을 찬 죄인들이 업칭 앞에 꿇어앉아 있고 저승의 판관들은 끊임없이 두루마리의 무게를 달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저승사자들은 부지런히 말을 타고 새로운 두루마리를 전달한다. 죄인들이 저승세계인 명부(冥府)를 관리하는 열 명의 왕(十王)에게 차례대로 심판받고 업보에 따라 형벌을 받는 장면도 적나라하다. 죄인을 얼음에 가두는 빙산지옥,끓는 물에 집어넣는 확탕지옥,칼숲에 떨어뜨리는 검수(劍樹)지옥,뱀과 구렁이에게 잡아먹히는 도사지옥,톱으로 몸을 자르는 거해(鋸解)지옥,혀를 빼내 그 위를 소로 하여금 밭갈게 하는 경설(耕舌)지옥…. 그러나 죄인을 지옥에 떨어뜨리기만 한다면 불교는 자비의 가르침이 되지 못한다. 지옥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 부처가 되기를 미뤄둔 지장보살은 지옥문을 깨뜨릴 수 있는 지팡이인 석장(錫杖)과 암흑의 세상을 비춰줄 보주(寶珠)를 들고 다니며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한다. 또 관세음보살은 현세의 고난을 직접 보고 듣기 위해 여러 형태로 몸을 바꾸며 중생들의 곁을 지켜준다. 전시된 불화를 다 보고 나오면 사람 키 높이의 거울 두 개가 서 있다. 불화 속의 업경대를 재현한 볼록거울과 오목거울이다.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자못 숙연해진다. 내 죄의 종류와 무게는 얼마나 될까.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