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시병 동화친구 대표이사 사장(42). 1994년 맨손으로 책 사업에 뛰어들어 10년만에 정상에 우뚝 섰다. 아동도서 도매시장 3위 업체, 도서 대여 2위 업체 등을 키워낸 것. 그에겐 아무런 배경이 없다. 고향은 충남에서 가장 오지로 꼽히는 청양.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력도 고졸이 전부다. 그러기에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온몸을 던져 어린이책 사업에 매달렸다. 이렇게 개척한 거래처가 1천곳이 넘는다. 아동도서 대여사업을 위해 구축한 전국 지부도 1백개 이상이다. 배 사장은 그야말로 한 우물만 팠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엔 직장 몇 곳을 다녔다. 책 관련 직장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난 85년이래 18년간 책 관련 일만 해왔다. 첫 인연은 월간잡지 '말'. 94년엔 어린이책과 인연을 맺었다. 현재 5백여 출판사로부터 어린이책을 공급받아 1천여 소매점에 판매한다. 책 도매업을 하다 보니 될만한 사업이 눈에 띄었다. 아동도서만 전문으로 빌려주는 프랜차이즈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배 사장은 현재 책 관련 회사를 4개나 거느리고 있다. 모기업 '어린이책'은 책 도매업체이고 '동화친구'는 아동도서 대여 프랜차이즈 브랜드이다. '우리아이'는 온라인 서점으로 아동도서에 관한 신간정보를 제공하고 책을 판매한다. '청원도서유통'은 할인매장안에서 책 영업을 하기 위해 별도로 세운 법인이다. 배 사장은 청양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80년에는 상경해 학원 문을 두드렸다. 재수를 하기 위해서 였다. 학비는 누나가 댔다. 누나는 서통 노조위원장이었다. 그런데 누나는 구속돼 수감됐다.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 85년 말엔 월간잡지 '말'에 입사했다. '재야언론'으로 정식 등록도 되지 않은 잡지였다. 잡지를 만들어 길거리에서 팔기도 했다. 월급도 없었다. 활동비 명목으로 한달에 30만원 받는게 고작이었다. "89년부터는 줄곧 사회과학 서적을 내는 출판사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94년 마루라는 출판사를 세워 아동도서 20여권을 냈죠. 그런데 오래 버티지 못하고 2년만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출판사업은 그에게 좋은 경험이 됐다. 책 유통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다시 책 도매업체에 들어가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 이어 98년엔 동업자 2명과 함께 아동도서 전문 유통업체 '어린이책'을 세웠다. 설립 초기 아는 곳이 없어 막막하기만 했다. 학교나 학원이 눈에 띄면 닥치는대로 들어가 아무나 붙잡고 회사소개 자료를 건넸다. 이런 식으로 1천여개의 거래처를 텄다. 2000년부터는 운이 따랐다. 온라인 서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덕분에 대형 거래처를 대거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한달 매출이 20억원 이상으로 훌쩍 뛰었다. 대기업에 비길 순 없지만 이 정도면 책 유통업계에선 3위권이다. 아동도서 유통으로 쌓은 노하우로 도서대여 시장에도 진출했다. 2001년 10월이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동화친구'. 당시 도서대여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30여 업체가 난립, 극심한 경쟁을 벌였다. 배 사장은 그러나 자신이 있었다. 모기업이 도서유통업체여서 경쟁업체들보다 훨씬 다양한 책을 싸게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했다. 우선 최종 소비자(회원)에게 책만 대여하는게 아니라 교육용 비디오를 끼워줬다. 회원이 한달에 1만원만 내면 매주 책 3권과 비디오 1편을 볼 수 있게 했다. 이 무렵 일부 업체는 한달 회비를 5천원까지 후려치기도 했다. "남들이 막무가내로 덤핑을 해도 저는 꿋꿋이 가격 마지노선을 지켰습니다. 가격을 후려치지 않더라도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덤핑 업체들은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동화친구의 성장전략중 남다른 것이 또하나 있다. 본사가 지부(가맹점)의 이익을 세심하게 배려했다는 점이다. 가맹점이 문을 열 때는 본사로부터 책을 대량 구입하는게 업계 관행이다. 이 때문에 가맹점주는 창업 초기에 자금압박을 받게 마련이다. 배 사장은 관행을 무시하고 단계적으로 책을 구입토록 해 일시에 목돈을 들여야 하는 부담을 덜어줬다. 자연스레 점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후발업체가 2년만에 도서대여업계 선두권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윈-윈 전략이었다. 배 사장은 다시 태어나도 책 장사를 하겠다고 말한다. "책 장사는 단순히 돈만 버는 장사가 아닙니다. 고객들의 정신을 살찌우는 사업이죠. 더구나 어린이책이니까 항상 즐겁고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돈벌이는 그 다음 문제죠." 강창동 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