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4 06:20
수정2006.04.04 06:24
중국 남서부 쓰촨성(四川省)의 청두(成都)를 출발한 비행기가 두어 시간만에 '세계의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티베트의 관문 공가공항.
하늘은 파란 물감을 쏟아부은 듯 푸르디 푸르러서 한국의 가을 하늘 같다.
그러나 햇볕은 여름처럼 따갑고 공항을 둘러싼 민둥산들은 낯설기만하다.
공가공항에서 티베트의 제1도시 라싸로 가는 길에는 얄룽창포강이 동행한다.
티베트 서쪽 끝의 성스러운 산, 흔히 수미산으로 불리는 카일라스산에서 발원한 얄룽창포강은 길이 2천9백㎞의 장강(長江)이다.
중류에서 브라마푸트라강이 됐다가 하류에선 갠지스강과 합쳐져 인도양으로 흘러든다.
길옆에 점점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건물마다 만국기같은 깃발이 펄럭인다.
'탈초'라고 불리는 이 깃발은 하늘ㆍ구름ㆍ불ㆍ물ㆍ땅을 상징하는 청ㆍ백ㆍ홍ㆍ녹ㆍ황색의 천을 깃대에 달고 그 위에 '옴마니반메훔'의 육자진언(六字眞言)을 써놓은 것.
가정의 평화와 개인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다리나 언덕에는 '룽다'라는 흰 천을 걸어두기도 한다.
공가공항에서 라싸까지는 약 1백㎞.
도로 사정은 괜찮은 편이지만 과속과 추월, 수시로 울려대는 경적소리 때문에 놀라기 일쑤다.
오죽하면 길옆 바위벽 곳곳에 붉은 페인트로 '만(慢ㆍ천천히)'이라고 써놓았을까.
얄룽창포강이 라싸강과 만나는 지점에서 곡수대교를 건너 다시 한시간 남짓 달리자 드디어 라싸다.
인구 40만의 라싸는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티베트의 중심이다.
티베트의 종교적ㆍ정치적 수장인 달라이라마의 거처이며 역대 달라이라마의 영탑을 모신 높이 1백17m의 포탈라궁을 비롯해 티베트 불교의 중심사원인 조캉 사원, 티베트 최대의 절이며 전통교육기관인 드레풍 사원과 세라사원, 달라이라마의 여름별장인 노르부링카 등을 하루이틀에 다 보자니 퍽 숨차다.
그러나 조캉사원이나 세라사원 등을 찾는 순례자들의 순결한 신심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경건하게 한다.
조캉사원 앞에서 '옴마니반메훔'을 외면서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불자들, 세라사원에서 마니차(원통에 불경을 넣은 경통)를 돌리며 간절히 소원을 비는 맑은 눈들….
인구의 98%가 불교신자인 티베트 사람들의 신심은 정말 특별하다.
라싸에서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로 가는 길은 만만찮다.
라싸에서 서쪽으로 2백80km 가량을 달리는데 무려 6시간 남짓 걸렸다.
얄룽창포 강을 왼편에 끼고 한동안 달리다 강을 건너서는 산과 언덕의 비포장길을 구비구비 넘어 저녁 무렵에야 시가체에 당도했다.
얄룽창포강변의 노란 유채밭과 메밀꽃, 수확기에 접어들어 고개를 삐죽삐죽 내민 보리밭, 그리고 코발트빛의 '원조'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푸른 하늘이 없었더라면 참으로 지루한 길일 뻔 했다.
시가체에선 달라이라마와 함께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판첸 라마가 집무하는 타시룽포 사원이 순례자가 들러야 할 필수 코스다.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가 해요 판첸 라마는 달'이라고 한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14대, 판첸 라마는 11대째.
티쉬룽포 사원은 1960년대 문화대혁명 때 거의 다 파괴된 것을 80년대에 복구해 비교적 깔끔한 편이다.
시가체에서 동쪽으로 90km쯤 떨어진 티베트 제3의 도시 장체엔 티베트 불교의 주요 종파인 카담파 겔룩파 사캬파 등 3개 종파가 공존하는 쿰붐사원이 있다.
법당에는 붉은 색 티베트 가사를 걸친 스님들이 한창 독경 중이고 법당 옆에는 '10만불탑'이라는 팡코르초르텐 9층탑의 황금빛 고깔이 햇빛에 번쩍인다.
이제 라싸로 돌아가는 길.
새벽 이슬을 머금은 유채꽃과 보리이삭, 평원을 노니는 양떼와 말들을 스치며 1시간 반쯤 달리자 거대한 설산이 눈 앞을 가로막는다.
만년설에 뒤덮인 해발 7천1백91m의 노진캉상 봉이다.
정상 아래쪽 해발 5천2백m의 카롤라 고개에서 만년설을 배경으로 풀을 뜯는 야크떼와 야크 젖을 짜는 아낙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설산을 빠져 나와 너른 평원을 1시간쯤 달리자 티베트의 3대 '성스러운 호수'중 하나인 얌드록초 호수가 나온다.
해발 4천4백82m에 있는 6백38㎢의 넓이의 이 벽옥호(碧玉湖)는 그야말로 '하늘호수'다.
탈속(脫俗)의 고요함과 정갈함을 담고 있다.
얌드록초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해발 4천9백50m의 캄팔라 고개를 넘어서자 길은 급전직하, 순식간에 속세로 돌아왔다.
라싸(티베트)=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