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비결서가 인기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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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연휴 귀경(歸京)길이 예년보다 힘들었다고들 한다.도로사정 얘기가 아니다.
도로는 연휴가 길어서였던지 작년보다 오히려 한산했던 편이었다.
대신 마음이 편치 않았단다.
쉬는 동안 나라 안팎으로 불상사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안에서는 태풍 '매미'가 남부지방을 휩쓸었고 나라 밖에서는 농업시장의 '무장 해제'를 강요하는 WTO(세계무역기구) 파고가 휘몰아쳤다.
'매미'는 1년 농사를 감사하기 위한 명절의 의미가 무색하게 미처 여물지도 않은 곡식과 과일들을 쓰러뜨리고 떨어뜨렸다.
'수출 한국'의 표상이었던 부두의 거대한 크레인도 엿가락처럼 휘었고 1백여명의 사상자 가족들에겐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겨놓았다.
"올해는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좀 경기가 살아나겠다 싶으면 꼭 악재가 생기네요.
연초 북핵과 이라크 전쟁이 경기 회복을 지체시키더니 그 후엔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가 난리를 쳤고 사스가 지나간 후 좀 괜찮겠다 싶으니 파업,그 후엔 태풍….정말 못해 먹겠네요."
과천의 경제 관료들은 또 다른 차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이 답답하고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는 WTO 개방 파고 소식에 가슴을 졸이고 있다면서 "돈만 벌면 한국을 뜨고 싶다"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렇게 나라 모습이 어수선한데도 집권 여당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신·구 주류로 갈려 권력 투쟁에 여념이 없다.
거대 야당 역시 "우리를 당할 자 누구랴"는 식의 세(勢) 과시에 자족하며 또 다른 정국 불안의 단초를 늘리고 있을 뿐이다.
요새 서점가에 '송하비결(松下秘訣)'이란 예언서가 대단한 인기라고 한다.
어느 시대든 살기 힘들어지면 종말론이나 희한한 비결서가 뜨게 마련이다.
여야 위정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박수진 경제부 정책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