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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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TV의 드라마 '혼수'(김수현 극본)가 추석연휴 특집프로그램중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졸부집안의 아들과 한복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가정의 딸이 5년 연애 끝에 결혼하려다 남자 엄마의 과다혼수 요구로 결국 헤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시모쪽에선 며느리감에게 수입가구와 자신의 밍크코트 다이아몬드반지,신랑의 명품시계 등 수억원어치의 혼수 리스트를 준다.
그것도 모자라 큰며느리는 예단비만 1억원 이상 보냈으니 알아서 하고,한복단추는 촌스러운 금대신 큼직한 밀화로 하라고 말한다.
시모쪽 주장은 "물려받을 재산이 얼마인데"다.
이 드라마가 이렇다 할 외화들을 제치고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본격적인 결혼철을 앞두고 어느 가정에서나 한번쯤 부딪칠 수 있는 혼수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까닭이다.
여자쪽 예산이 6천만원이었는데도 형편없다고 매도된 것은 혼수문제의 현실과 심각성을 일깨웠다.
경상도와 함경도에선 여자는 이부자리만 장만하면 되던 전통에 아랑곳없이 여자쪽 혼수는 갈수록 늘어난다.
종류와 품목뿐만 아니라 금액도 천정부지다.
일부에 국한된 일이겠지만 시계 가방 등 예물은 몇백만원짜리 수입품,가전제품만 2천만원 이상,심지어 이바지음식 값도 5백만∼1천만원씩 든다는 마당이다.
이러다 보니 혼수를 둘러싼 양가의 갈등으로 혼담이 깨지거나 여자쪽 가족 전체가 마음의 상처를 입는 수도 생긴다.
대다수 사람들이 우리 혼례문화가 허례허식적이라는 데 동조하는데도 개선되기는커녕 심해지는 건 자식 또는 자신의 미래를 돈으로 사려는 풍조가 확산되는 탓이라고 한다.
열쇠를 줘서라도 조건 좋은 신랑감을 구해야 한다거나, 신랑은 돈이 많이 드는 집을 장만하니 그에 합당한 살림살이를 갖춰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과다혼수를 부채질한다는 얘기다.
기왕이면 조건 좋은 배우자를 만나겠다는 세태를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당장의 조건이 완벽한 앞날을 보장하지 않고,화려한 혼수가 사랑과 신뢰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건 상식이다.
딸 가진 부모 모두 "남이 하니까"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