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천 감독의 '내추럴 시티'는 사이보그와 인간의 사랑과 대결을 그린 대작 SF영화다. 순 제작비 76억원을 들여 9개월여의 촬영과 1년여의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통해 완성됐다는 사실은 기대보다 우려를 낳는다.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아 유 레디' 등 국산 대형 판타지물들이 줄줄이 흥행에 참패했기 때문이다. '내추럴 시티'는 앞선 SF판타지물처럼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 구축에선 다소 흠집을 갖고 있지만 영상미학 면에서는 한국 영화의 표현양식을 일보 진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비행체가 떠 있고 고성(古城)이 먼 발치에 보이는 해변가의 가상현실 장면이나 여신상에서 굽어본 미래의 도시 등은 변화한 미래상이 실재처럼 느껴질 정도다. 사이보그들이 줄지어 폐기되는 공장,격투가 벌어지는 사이보그 제조회사 뉴콤사 모습 등도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실사 장면에다 미니어처와 컴퓨터그래픽 등을 정교하게 합성한 기술력이 돋보인다.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적은 예산으로 거둔 대단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주제의식과 이야기 틀은 20여년 전의 할리우드 SF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머물러 있다. 사이보그 여인 '리아'(서린)와 그녀를 사랑하는 인간 'R'(유지태)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나 R의 직업이 이탈한 사이보그를 폐기처분하는 '블레이드 러너'란 점에서 흡사하다. 산성비가 내리고 일본인과 중국인들에 의해 점령된 거리와 간판,우동가게 등 배경장면들도 마찬가지다. R과 리아와의 사랑을 영원히 지속하기 위해 타인의 신체에 둘의 영혼을 더빙(이식)하려는 설정은 '블레이드 러너'보다 한걸음 나아가려는 시도다. 그런데 '영혼 더빙'의 희생자가 인간 '시온'(이재은)이어야만 한다거나 또 다른 사이보그가 자기 생명을 연장시키는 방편으로 시온을 죽이려는 설정 등은 논리적 비약이다. 관객들은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해 의문을 품은 채 지켜보다가 나중에야 짐작한다. 도입부에서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 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플롯에 담긴 지혜가 부족하다. 암담한 미래상을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한다. 사이보그를 인간보다 사랑하는 존재,사이보그를 살리기 위해 인간을 죽여야 하는 모순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을 암시한다. 희생양인 시온의 직업이 점을 치면서 몸을 파는 구세기의 인간형이란 설정은 속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은 기계보다 열등한 존재로 전락할 것임을 시사한다. 26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