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타계한 교보생명 신용호 창립자는 우리나라 보험산업이 오늘날 세계 6위권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1917년 전남 영암에서 6남 중 5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열아홉 살에 중국으로 건너가 독학하면서 독립운동가들과 친교를 맺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이 때의 힘겨운 대륙생활을 통해 그는 "억울하고 분하면 성공해서 이겨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직원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는 해방 후 귀국해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을 창립 이념으로 삼아 1958년 대한교육보험을 세웠다. '풍부한 인적자원만이 희망'이며 피폐한 경제를 살려 자립의 터전을 다지는 데는 보험사업이 가장 적합한 분야라는 게 그의 생각이자 철학이었다. 창업 후 그는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개발했다. '소 팔고 논 팔아가면서 자식만은 가르치겠다'는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을 반영한 이 상품은 한국 보험산업 발전의 기틀이 됐다. 또 대표적 단체보험인 퇴직보험과 건강보험의 효시인 암보험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83년에는 국내 최초로 순보험료식 책임준비금을 1백% 적립,재무건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였으며 이는 국내 보험업계의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다. 고인은 평소 '발명가적 창의'와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는 도전정신'을 강조했고 이를 스스로 실천했다. 교보생명은 현재 자산 30조원 규모의 업계 2∼3위권 회사로 성장해 있으며 교보문고 자동차 리얼코(부동산관리회사) 정보통신 보험심사 증권 투자신탁 생보부동산신탁 등 8개 관계사를 두고 있다. 고인은 기업경영 못지않게 사회공익 활동에도 관심을 보였다. 단일 면적으로는 세계 최대인 교보문고를 지난 80년 설립해 교보생명의 사회공익적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어 대산문화재단,산농촌문화재단,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을 잇따라 설립하며 사회공익 지원사업을 왕성하게 펼쳤다. 고인은 세계보험협회로부터 세계보험대상과 세계보험전당 월계관상을 받았으며 APO국가상(아시아생산성기구) 국민문화훈장(한국 정부) 등도 수상했다. 미국 앨라배마대학교는 그를 '보험의 대스승'으로 추대했으며 연세대 상경대 학생들은 기업윤리대상을 수여하는 등 국내외 주요 대학에서 그에 대한 조명도 계속 이어졌다. 숭실대 순천향대 원광대는 '신용호 경제사상과 경영철학'을 주제로 한 대학 강좌를 개설해 학생들로부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는 건축과 디자인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최근 준공한 교보생명 서초동 사옥(교보타워)은 스위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건물로 유명한데 신 창립자는 그의 설계도에 대해 열일곱번이나 '퇴짜'를 놓을 정도로 건축물의 예술성을 중요시했다. 직원들은 "한평생을 보험사업으로 일관하면서도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일깨워주는 일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