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기업 엑소더스 이유있다 .. 김영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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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그룹 회장이 의료보험료를 안 낸다고 가정해 보자.그것도 정부가 그룹 총수에게 무료진료란 특혜를 부여했다고 가정해 보자.온 나라가 뒤집힐 것이다.
그 이유에 관계없이 시민단체들은 '조세정의'를 외치며 여론몰이에 나서고,정국은 정경유착 논란에 휘말릴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현지에 투자한 외국기업 임원에게 고급 승용차를 선물했다고 상상해 보자.즉시 사대주의 논쟁이 일면서 그 기업은 질시와 배척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있을수도 없는 기이한 사건(?)들이 지금 중국대륙에서 벌어지고있다.
베이징시가 외국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외자기업은 물론 임원 개개인의 주택 및 자동차 구입비까지 챙겨준게 그것이다.
총 지원금은 1백89만 위안,우리 돈으로 2억7천4백만원에 불과하나 시 당국의 세심한 배려가 주는 대외적 홍보효과는 상당한게 분명하다.
칭다오시는 경제계를 대표하는 부호들에게 무료로 병원 진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 대상도 중국 최대 종합가전업체 하이얼그룹의 장루이민(張瑞敏) 회장,휴대폰업체인 하이신그룹의 저우허우젠(周厚健) 회장,최대 맥주회사인 칭다오맥주의 리구이룽(李桂榮) 회장 등 중국을 대표하는 부호들이다.
시 당국은 지역발전에 공헌한 기업인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항의하는 언론이나 시민단체는 물론 없다.
중국이 세계 최대 외국인 투자 유치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단지 노동력이 값싸고,시장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80년대 중반 한국은 물론 일본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들이 10억켤레의 신발을 팔기 위해 중국에 뛰어들었다가 불과 몇년 만에 철수한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을 찾은 기업들은 그들의 상관행을 몰라 속고,후진적 인프라에 시달리다 빚만지고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중국이 10여년만에 세계에서 가장 투자하기 좋은 나라로 발전한 것은 기업을 바라보는 정부나 국민들의 시각이 바뀐 결과임에 틀림없다.
중국경제는 아직도 사회주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기업인은 영웅이며 기업은 '중국을 움직이는 마차'로 그 지위가 격상돼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외국투자를 유치하기는커녕 해외로 떠나는 국내기업들을 막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은 물론 반도체 LCD 등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첨단산업도 보따리를 싸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기업도 마찬가지다.
몇 차례 혹독한 파업을 겪으면서 중국이나 홍콩 등 인근국가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고임금 강성노조 정부규제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본질은 정부나 국민들의 기업관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노동자는 사회적 약자며,기업과 기업인은 착취계급이란 2분법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만들고 한국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자들이 이끌어 간다는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21세기 글로벌시대를 맞아 우리 사회도 이에 걸맞은 보다 적극적인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
구호만의 글로벌경제가 아니라 경제와 기업을 보는 사고의 틀이 변해야 할 때다.
일본인들이 소니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듯 우리도 삼성전자나 LG전자를 존중하는 풍토가 정착돼야 떠나는 기업들을 잡아둘 수 있다.
지난주말 한 포럼에서 "지금 기업은 전쟁을 하고 있는데 정부가 매너를 지켜라 강요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라는 한 기업인의 지적에 공감을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