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원정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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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던 '원정 출산'이 결국 탈을 냈다는 소식이다.
출산차 미국에 간 한국 여성들이 자녀의 미국 여권 발급을 신청했다가 체류 사유가 입국 당시 서류와 다르다는 이유로 국토안보부 이민세관국(ICE)의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원정 출산은 몇년 전 일부 계층에서 시작됐으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산층으로 확산됐다고 한다.
친척집 등을 방문해 낳던 전과 달리 전문업체가 등장,2천만∼3천만원에 입출국 준비에서 입원 산후조리까지 처리하는 '패키지형'을 판매하면서 너도 나도 나선다는 얘기다.
인터넷에 보면 '아기에게 보다 넓은 세계와 기회를'이라는 문구 아래 원정 출산에 관해 안내한 업체가 수두룩하다.
나라도 미국 외에 캐나다 뉴질랜드 등으로 확대됐다.
뉴질랜드에선 원래 무료인 공립병원 출산비를 한국 등 아시아 산모에겐 물리기로 했다고 할 정도다.
원정 출산을 감행하는 건 자녀가 미국이나 캐나다 국적을 얻으면 고교까지 무상교육을 받고 18세 이후 부모를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민가면 영주권을 받기 쉬워서라고 한다.
군 복무 기피도 요인으로 꼽힌다.
원정 출산 아기의 70%이상이 남아라는 얘기도 있다.
원정 출산은 학원이 집값을 결정하고,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사교육을 등한시했다간 이렇다 할 대학에 보내기 힘들고 결과적으로 자녀교육에 실패했다는 얘기를 듣기 십상인 이 땅 현실이 만들어낸 슬프고 안타까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적 망신이요 누구나 참담한 심경을 가눌 수 없겠지만 "미국 아이를 만든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거나 '한국인의 긍지' 운운하는 시각만으로 재단하기 힘든 대목을 지니는 것도 사실이다.
도덕적 비난이 아무리 거세도 젊은층 70%가 이민을 가고 싶다고 할 만큼 '불안한 현재,불확실한 미래'를 바로잡지 않는 한 원정 출산 열기는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이역만리에서 혼자 아이를 낳는 위험을 무릅쓰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지 못한다면 설사 이번같은 사건이 또 생겨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들은 애 장래를 생각해서 그렇게까지 한다는데" 쪽으로 퍼져 나갈지 모른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