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활동 중인 작가 정인씨(45)가 첫 소설집 '당신의 저녁'(문학수첩)을 냈다. 모두 11편의 단편이 실린 이 작품집은 '가족'이라는 삶의 틀이 개인의 욕망과 조화롭게 공존하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이면을 조명하고 있다. 작품 속 화자들은 모두 이미 파탄이 나 버렸거나 파탄의 조짐이 보이는 인간관계의 어둡고 암울한 그늘 속을 배회한다. 표제작 '당신의 저녁'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오직 자식들만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와 이기적인 생각으로 어머니의 재산만 탐내는 자식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해체되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푸른 그림자'와 '너무 가벼운 나날' 등도 현대 사회의 강력한 관계 메커니즘 속에서 가족적 유대감이라는 끈은 언제든 깨져 버릴 수밖에 없는 무력한 것임을 시사한다. '떠도는 섬'이나 '오래된 선물' 등은 분단 상황이나 안락사와 같은 보다 넓은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나 부모 세대가 겪었던 고통이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이 돼 아들 세대로 이월된다는 점에서 가정은 역사적 상처를 공유하고 심화하는 고통의 장소로 그려진다. 가족 이야기에 천착한 것에 대해 작가는 "오랜 결혼생활에서 가장 가까이 접한 소재가 가족이다. 가족을 들여다보면 세상살이가 보인다"고 말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문단에 데뷔한 작가는 2000년 '한국소설' 제7회 신인상과 '21세기 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