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의 그늘이 걷히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초긴축 편성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내년 일반회계 예산안으로 확정된 1백17조5천억원은 올해 당초 예산안 1백11조5천억원보다 5.4% 많은 규모지만 1차 추경예산 4조5천억원을 합치면 증가율은 고작 2.1%에 불과하다. 여기에 조만간 편성될 수해대책 추경예산 추정액 3조원을 합치면 내년 일반회계 예산은 사실상 마이너스로 돌아서게 된다. 전년에 비해 일반회계 예산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것은 91년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당초 공약을 지켜 '7년만의 균형재정 달성'에 도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SOC(사회간접자본) 및 중소기업부문 등 상당 부분의 예산을 줄이는 '실험'을 단행했다. 한편 정부는 예산편성 기준환율을 달러당 1천2백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내년 원ㆍ달러 환율이 계속 하락할 경우 관세나 수입부가세 등 세수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초긴축 재정' 승부수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정부가 경기진작을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일시적 미봉책은 되지만 오히려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왜곡해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초긴축예산 편성 배경을 설명했다. 노 대통령이 최근 "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하지 않겠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적자국채 발행보다는 재정안정을 통해 미래의 위험요소에 대비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의욕'이 끝까지 지켜질지는 확실치 않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소비자물가 상승률) 8%를 전제로 했지만 최근 원화환율의 급락 등으로 내년 성장률이 당초 예상했던 5%대에 못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 경우 세입이 예상보다 줄어들어 세출예산을 맞추려면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 복지ㆍ국방 늘고 SOC는 '뒷걸음' 복지분야 예산은 12조1천5백51억원으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일반회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7년 6.5%에서 내년에는 10.3%로 늘어난다. 복지 예산의 증가는 차상위 계층으로 불리는 저소득층과 노인, 여성(보육)분야 예산의 확충과 청년 실업문제 해결에 집중돼 있다. 일각에서는 복지 예산의 과도한 증가가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방예산은 8.1% 늘어난 18조9천억원으로 99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을 보였다. 전력증강 사업에 6조3천억원이 배정됐고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른 경비 등이 반영된 것이다. 국방예산의 증가에 대해 예산처 관계자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불가피한 선택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부 자체 개혁없이 예산만 증액해주는 것은 재정개혁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이에 비해 SOC 예산과 산업ㆍ중소기업 지원예산은 각각 6.1%, 11.2%씩 감액됐다. 규모는 SOC가 17조1천6백억원, 산업ㆍ중소기업 지원이 3조4천억원 수준이다. 이들 2개 부문의 투자는 잠재성장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예산 감액이 가뜩이나 위축돼 가고 있는 성장잠재력을 더욱 움츠러들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예산처는 올해 추가경정 예산을 통해 지원된 4조5천억원 가운데 상당부분이 SOC 및 중소기업 관련 예산이므로 내년 예산을 미리 당겨 쓴 셈이어서 잠재성장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