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한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청구를 수용하는 방식을 취해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의 소속회사별 출자 현황'을 공개했다. 투자 활성화를 위해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던 공정위로서는 이번 기회에 뭔가 쐐기를 박으려 했던 것 같다. 자료 공개를 통해 규제 대상 기업들이 출자총액제한제도 적용제외나 예외인정 조항 등을 이용해 비켜갔다는 점이 부각됐고,정보기술(IT) 생명기술(BT) 등 이른바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신산업 출자로 예외인정을 신청한 것은 한 건도 없었다는 점도 강조됐다.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던 기업들이 적용제외와 예외인정 조항 등을 생산적 투자보다는 지배력 확장에 이용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정보 공개를 요구했던 시민단체는 바로 그런 시각에서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조항 등을 대폭 축소,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도한 대로 해석도 꿰맞춰지는 것일까. 하지만 필요해서 적용제외나 예외인정 조항을 만들었다면 이를 이용한 것을 두고 법망을 빠져나갔다고 보는 시각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규제 대상 기업들이 동종 및 밀접한 관련업종 출자(적용제외),외국인투자기업 출자(예외인정)를 많이 활용했다는 것을 지배력 확장으로 보는 해석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강조하는 핵심역량 강화라든지 외국인 투자유치 측면에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기회에 전체 출자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이런 출자가 언제까지 적용제외나 예외인정 조항을 통해야만 하는지 생각해볼 때도 된 게 아닐까. 기업이 투자 규제를 풀어달라고 주장하면서도 IT 등 신산업분야 출자 예외인정 조항을 활용하지 않았다고 공정위가 반박하는 것도 문제다. 삼성전자 SK텔레콤 KT 같은 IT기업들의 경우 동종 및 밀접한 관련업종 출자(적용제외)를 활용했을 것이고 보면 기업이 신산업 투자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일단 틀린 것이다. 문제는 업종이 다른 기업에서 IT BT 등 신산업 출자가 없다는 것인데 솔직히 말해 언제 바뀔지 모를 예외인정 조항만 믿고 선뜻 신규 출자에 나설 기업이 얼마나 될까. 총량적 제한을 풀었을 때와 예외인정을 받아야 하는 경우는 투자심리에서부터 차이가 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한 서로 다른 연구 결과도 관심이다. 서울대 기업경쟁력센터(재정경제부 용역)는 '투자 측면'에서 이 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한 반면 KDI(공정위 용역)는 '지배력 측면'에 주목했다는 평가다. "모든 경제학자들을 드러눕혀 쭉 이어본다면 그들은 결론이라는 곳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버나드 쇼의 유명한 농담처럼 경제학자의 견해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결국 정책결정자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책을 결정하는 입장에서 보면 투자도 활성화하고 싶고 기업개혁도 하고 싶을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완전히 분리된 문제라면 각각의 '최적해'가 전체적인 최적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얽히고 설킨 상태에서는 그렇게 최적해를 구해본들 그것은 전체적인 최적해도 아닐 뿐더러 현실적으로 작동할 수 없는 해법이기 십상이다. 지금의 경제상황에서 투자활성화 문제와 지배력 문제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선택이 필요하다. 기업의 지배구조라든지 사회적 책임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장률은 떨어지고 청년실업률은 높아져가는 상황에서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만큼 사회에 봉사하는 기업도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그 이상을 말하는 것은 어쩌면 '불필요한 사치'일지도 모른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