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개막식이 열린 2일 밤,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관은 가을바다와 영화의 유혹에 빠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초대형스크린 앞 5천여 객석엔 깔끔한 정장 차림의 노부부,청바지 차림의 대학생,배낭을 멘 외국인이 스스럼 없이 어울렸다. 조명탑 불빛 때문에 화면이 제대로 안보이고 사회자가 개막식을 폐막식이라고 하는 등 실수투성이였지만 뜨거운 영화제 열기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개막작 '도플 갱어'(구로자와 기요시 감독)는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자기파괴 욕구를 도플갱어(분신)의 행위를 통해 파헤친 일본 영화.'쉘 위 댄스'의 주연 야쿠쇼 고지가 중년남자의 미칠 듯한 심정,본능대로 행동하고픈 충동,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 원하는 것을 찾고자 하는 모습 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1996년 시작된 부산국제 영화제의 올해 참가작은 61개국 2백43편.역대 최고 규모다. 뿐만 아니라 영화제 신설 이후 처음 개설한 '필름마켓'(영화 수출ㆍ입 시장)에 아시아 각국의 영화업체 3백여곳이 참가,축제의 장을 넘어 명실상부한 아시아 영화산업의 중심으로 도약한다는 목표에 한걸음 다가섰다. 도쿄영화제나 상하이영화제가 갈수록 빛을 잃고 있는데 비해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잡은 건 아시아 및 제3국 감독의 발굴ㆍ지원에 힘쓰는 등 아시아영화제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한 까닭으로 여겨진다. 부산영화제의 경우 그러나 매년 개최일이 바뀌는 바람에 세계 유일의 '음력 영화제' 내지 '게릴라 영화제'로 불려 왔다. 영화제 전용관이 없어 극장가의 대목인 추석연휴를 피해 열어야 했던 탓이다. 그러다 10월에 아시안 게임같은 큰 행사가 열리면 추운 11월로 늦춰져 야외개막식을 갖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영화제를 넘어 세계 5대 영화제로 발전하려면 좀더 세심한 기획은 물론 개최일이 고정될 수 있도록 전용공간을 설립하는 게 급하다고 한다. 부산영상미디어센터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고 하거니와 기왕 세울 거라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같은 명소로 만드는 것도 좋을 성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