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업체들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국내 화장품업계 '빅5' 가운데 올 상반기에 매출이 늘어난 업체는 단 하나 뿐이었다. 제법 잘 나가던 업체들도 매출이 40% 안팎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외국계 업체들은 무서운 기세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프랑스계 로레알은 최근 '한국시장 3위'를 선언했다. 외국계 업체들은 한국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앞다퉈 '한국형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 매출 급감=올 상반기 국내 화장품업체들의 실적은 '사상 최악'이라고 할 만큼 저조했다. '빅5' 중에서는 선두 태평양만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5% 늘렸을 뿐이었다. 코리아나(-41.6%) 한국(-39.3%) 한불(-22.0%) 등 국내 3∼5위 업체들의 매출 감소폭은 예상외로 컸다. 2위 LG생활건강 매출도 1.6% 줄었다. 전반적으로 직접판매 비중이 큰 업체들이 타격을 많이 받았다. 직접판매에서는 총 구매의 80% 이상이 신용카드로 결제되는데 정부가 개인 신용한도를 축소하는 바람에 직격탄을 맞았다. 직접판매 비중이 80% 이상인 코리아나가 대표적이다. 실적 부진은 경영진 문책인사,매각설 등으로 이어졌다. 나드리의 경우 야심적으로 추진해온 화장품 방문판매사업이 부진하자 최근 대표이사와 영업총괄 전무를 전격 교체했다. 회사나 공장 매각설이 나돌아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업체도 있다. 외국계 화장품업체들 약진=세계 최대 화장품업체 로레알의 한국법인인 로레알코리아는 최근 한국 진출 10년째인 올해 한국에서 '빅3'(화장품 순매출 기준)에 진입할 게 확실하다고 밝혔다. 로레알코리아는 지난해 28.7% 고성장했고 올해도 8%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계 업체들의 공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로레알코리아 크리니크 샤넬 등은 최근 동양여성용 스킨케어 제품,한국 여성이 좋아하는 색상의 립스틱 등 '동양여성 또는 한국여성 전용 제품'을 앞다퉈 내놓았다. 로레알코리아는 현지화 전략에 따라 한국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색조화장품을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외국계 업체들의 국내 화장품시장 점유율(시장 기준)은 올해 들어 30%선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0년 전 약 10%이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도약이다. 백화점 점유율은 80% 이상이다. 전문점에서도 외국산 비중이 30%선까지 올라섰다. 브랜드 파워가 관건=화장품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이 고전하고 외국계가 급성장한 것은 외국산의 브랜드 파워가 막강한데다 소비자들이 외제 유명 브랜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도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태평양의 헤라와 설화수를 꼽는다. 두 브랜드는 외국계 업체들의 공세와 불황 속에서도 2001년과 2002년 20~60%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도 15% 안팎의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화장품업계 한 관계자는 "화장품은 일종의 패션상품이라서 무엇보다 브랜드가 중요하다"며 "태평양이 선두를 지키고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브랜드를 키워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정애 기자 j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