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시세.' 최근 들어 서울 강남권 부동산중개업소에 이처럼 매도 호가를 지정하지 않은 채 시세대로 팔겠다는 매물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일식집 차림표에서 일부 고급 어종에 한해 가격 대신 '시가'라고 표시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가격을 정할 수 없어 그때그때의 시세대로 물건을 팔 수밖에 없는 시장 상황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개포동 등 강남권 중개업소의 매물장에는 '시세'대로 팔아 달라는 매물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인근 중개업소 등에는 실제 중개업소 창문에 '가격=시세'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우선 아파트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고 나면 오르고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어서 특정 가격을 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포동 에이스공인 조병희 대표는 "가격이 급등하는 시기에 흔히 시세대로 팔아 달라는 매물이 나온다"며 "'9·5대책'이후 주춤하던 시세 매물이 최근 들어 다시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집주인들이 집값을 너무 싸게 써붙였다며 반발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중개업소 창문에 최근 매매된 가격을 써붙여 놓으면 집주인들이 왜 이렇게 시세를 싸게 매겨놨느냐고 항의하는 바람에 아예 가격을 시세라고 써붙인다는 설명이다. 도곡동 인근 R중개업소 관계자는 "부자 동네일수록 항의가 심하다"며 "아예 시세라고 써붙여 놓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