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3년 등단한 작가 이상림(38)이 첫 장편소설 '아주 무거운 가방'(생각의나무)을 내놨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중산층 또는 여피족으로 불릴 만한, 도회적 정서를 공유하는 4명의 30대 인물들이다. 삶의 방향을 잃고 두리번거리는 여성 화자 '미아','환기'라는 모범적이지만 건조한 남성,욕망과 소비의 황도를 헤매는 남자 '성운',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미아의 언니 '미호' 등이다. 작품은 미아에서부터 시작해 환기 성운 미호를 거쳐 다시 미아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는 구조로 돼 있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30대들의 내면은 생의 가벼움과 일상의 무거움,냉소와 자기연민으로 가득하다. 적절한 경제적 여력과 사회적 지위에 무난한 결혼을 한 미아.삼풍백화점 사고로 졸지에 부모를 잃은 그녀는 삶에 무료함을 느끼고 일상이 공허해진다. 그녀는 한 탈출구로 '쿨'한 연애를 꿈꾼다. 성운과 적절치 않은 관계를 맺어보지만 그녀가 원했던 소통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단순한 꿈을 꾼,단순한 침대에서 깨어나 단순한 뉴스가 실린 신문만 골라 읽은 다음 단순한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미아는 단순한 삶을 원하지만 '가장 단순하다고 믿었던 것조차 실은 가장 복잡한 배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작가는 자연스럽고도 지적인 지문과 적절한 외래어 구사,군더더기 없는 냉정한 질문과 대답,일상적인 풍경을 무섭도록 낯설게 만드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농익은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