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계명을 경청하고/마음의 귀를 기울이어라/어진 아버지의 훈시를/기꺼이 받아들여라" 지난 6일 오후 6시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의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당. 치맛자락이 발끝까지 내려오는 검은 색 수도복을 입은 수사들의 성가 소리가 성당에 울려퍼진다. 30분 가량의 저녁기도 시간 내내 40여명의 수사들은 시편을 낭송하고 성가를 부르며 하느님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다짐했다. 저녁기도 후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수사들은 성서를 읽거나 묵상하다가 저녁을 먹은 뒤 8시부터 하루를 정리하는 끝기도를 드린다. 수도원의 밤은 적막하다. 끝기도가 끝나면 다음날 아침 5시에 기상할 때까지 대침묵의 시간이다. 기도와 독서,묵상만 있을 뿐이다. 대침묵의 밤을 보낸 수도원의 하루는 새벽 5시20분 아침기도로 시작된다. 기도와 묵상,아침미사에 이어 아침을 먹고 나면 8시부터는 각자의 일터로 가서 노동한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수도원의 설립자 베네딕도(480년∼560년?)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다. 베네딕도수도원이 기도와 노동을 강조하는 것은 영적인 생활과 노동의 조화를 위해서다. 수도원장인 이형우 아빠스('아버지'라는 뜻)는 "기도만 하고 노동하지 않으면 굶주리게 되고 기도 없이 노동만 하면 영적 고갈을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베네딕도수도원에는 일터가 많다. 수도원 입구의 대규모 목공소를 비롯해 농장,독일식 소시지를 만드는 순대방,주방,자료실,출판사,목공예·금속공예 및 유리화 제작,수녀원 지도와 강의 등의 다양한 일터에서 일반인 못지않은 강도로 일한다. 지난 59년부터 목공소에서 일해온 이귀단 수사(60·니콜라오)는 "전국의 성당을 위해 가구를 만들어주는 과정이 즐겁고 기도생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미사 때 포도주를 담는 잔인 성작(聖爵)을 방짜기법으로 만들고 있는 김영한 수사(피르마토)는 "성혈이 담기는 그릇이므로 한 점 티도 없어야 한다"면서 성작을 만드는 것이 곧 마음을 비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렇게 열심히 노동하지만 수사들에게 돌아오는 물질적 보상은 없다. 베네딕도수도원은 수사로 입회할 때 청빈과 정결,순명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청빈은 무소유,정결은 독신,순명은 수도원장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다. 그런데도 외국인 10명을 포함해 70여명의 수사들이 왜관수도원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이형우 아빠스는 "오늘날 가장 필요한 것은 '나는 섬김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말씀"이라며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정신을 잊지 말아야 가정과 이웃, 사회 등 공동체가 발전한다"고 강조했다. 왜관=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