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다자간 국제회의 에 데뷔했다.무대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3'정상회의. 노 대통령은 7,8일 양일간 동아시아 13개국 정상들과 한 자리에 앉아 공동의제에 대해 논의하고 6개국 지도자들과는 별도의 양자 회담도 가졌다. 7일에는 한·중·일 정상회담을 주재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역내 발전을 외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철저하게 챙기는 각국 지도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대한 소감의 일단을 드러냈다. "여러 지도자들을 만나보니 개인적인 철학과 전략,해박한 지식과 지혜가 번득였다"고 토로했다. "배운 게 많았다"는 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회담을 준비할 때는 참모들에게 '결국에 나는 배우네요'라는 말을 했다"고 소개했다.'대통령이 배우'라는 말은 우스갯소리로,보좌진의 사전준비를 칭찬한 말이었다.그러나 노 대통령의 말에는 곱씹어볼 만한 부분이 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다자간 양자간 정상회담 현장에서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배우 역할에 그쳐선 안된다.우리나라의 전략을 총괄하는 치밀하고도 지혜로운 감독이어야 한다.이번 회의를 통해 노 대통령이 절감해야 할 '체험학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대표적인 사례가 7일 한·중·일의 정상회담장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불쑥 꺼낸 위안화 환율 건.회의를 주재했던 노 대통령은 "의제가 아닌 위안화 환율이 거론됐을 때,고이즈미 총리에게 일본의 입장을 밝힐 기회를 준 것은 실수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 즉각 뒷정리를 잘해 별 문제없이 넘어갔다. 회담 직후 CNN은 중국의 환율절상 거부 방침을 주요기사로 내보냈다. 준비 안된 '환율 공조'가 미칠 파장을 생각해보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발리=허원순 정치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