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생산성이다] (4) '경영 효율에 미래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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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용인 수지점 가전코너는 최근 중국 최대 가전 메이커인 하이얼이 생산한 거실형 냉장고와 와인냉장고를 팔기 시작했다.
제품 성능이나 외장 면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대표 가전메이커는 물론 미국의 월풀이나 GE 제품과도 큰 차이가 없다.
결정적인 차이는 가격표다.
하이얼의 중국산 와인냉장고는 1백63ℓ짜리가 98만원으로 국산 제품(3백만원대)의 3분의 1에 그친다.
하이얼은 또 2만여명의 방문판매원을 갖고 있는 웅진코웨이개발과 제휴, 안정적인 판매망도 확보했다.
국내 가전업계에선 중국산 제품의 국내 진입이 본격화할 경우 국산에 비해 최대 70% 가량 싼 가격에 판매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 가전제품이 한국시장으로 밀려들면서 국내 가전업계는 더 이상 원가절감만으로는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김용열 산업연구원 기업연구팀장은 "이제 국내 기업들은 과거와 같은 '비용우위' 전략에서 '차별화 우위' 전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 자본과 같은 요소생산성이 아닌 디자인, 브랜드 가치와 같은 무형의 자산을 포함한 '경영생산성'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의 경영생산성은 아직 선진 기업들에 비해 상당히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국내 각 분야의 대표급 11개 기업과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 13개 기업의 경쟁력을 비교 평가한 결과는 한국 대표기업들의 빈약한 생산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내 기업들은 우선 경영생산성의 관건인 최고경영자(CEO) 육성 및 선발 프로그램이 미흡한 것으로 지적됐다.
미국의 경우 매출액 10억달러 이상인 기업의 59%가 공식적인 CEO 선발 절차를 운용하고 있다.
일본 소니는 전세계 18만명의 임직원중 30∼40대 사원 5백명을 CEO 후보로 선발, 'Sony University'에서 경영자 수업을 받게 할 만큼 CEO 선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잘 뽑은 한 명의 CEO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에서 CEO 선발 절차가 공식화돼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최근들어 삼성 등 일부 대기업에서 'TMT(Top Management Team)'와 같은 CEO 육성 및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연공서열 관행을 아직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CEO에 대한 지원체계나 보상수준도 선진국 기업들에 크게 못미친다.
미국의 인사관리 컨설팅 회사인 타워스 페린에 따르면 한국 CEO들의 2001년 기준 평균 연봉은 21만4천달러로 조사대상 25개국중 23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태국(13만8천달러)과 중국(8만9천달러)에만 앞섰을 뿐 말레이시아(30만달러)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급여수준=능력 평가'의 잣대로 통하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유수 기업 CEO들에 대한 낮은 처우는 조직 전체의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게 타워스 페린의 경고다.
최근 들어 기업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생산 마케팅의 글로벌화 면에서도 국내 기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대다수 선진 기업들은 글로벌시장을 겨냥한 명확한 비전아래 글로벌 경영차원에서 경쟁력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세계화 전략을 펴온데 반해 국내 기업들은 일부 선두 기업을 제외하고는 규제회피나 원가절감 등을 위한 수동적인 해외진출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요컨대 국내 대표기업조차 선진국 기업들에 비해 △미래 주력사업 발굴 △핵심인재 육성 △연구개발(R&D) △CEO 육성ㆍ관리 등에서 상당히 뒤떨어져 있다는 결론이다.
'지금'보다 '내일'이 더 문제라는 얘기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직 생산성에 대한 과거 패러다임(자본 노동 등의 투입을 늘리면 요소생산성을 극대화 할 있다는 인식)에서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홍덕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들이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 특유의 핵심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수"라며 "이를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CEO 확보와 함께 전략혁신 조직혁신 문화혁신을 통한 경영생산성 제고에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