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게 끝나고 나니 오히려 담담한 기분입니다." 지난 6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신약승인을 받은 '캄토벨주(注)'의 개발 주역 안순길 종근당 신약연구소장(약학박사·46)은 "열심히 공부해 치른 시험 후의 허탈감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리나라 항암제 신약으로는 세번째로 개발된 '캄토벨주'는 소세포 폐암의 1차 치료제와 난소암 2차 치료제로 시판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제약연구소를 설립한 종근당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국산 원료약품만도 15가지나 되지만 신약 개발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 소장이 '캄토벨주' 연구를 시작한 건 지난 93년. 두 번의 연구 실패를 경험한 그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연구에 몰두했다. 서울대 약대 주상섭 교수 등의 도움을 받아 초기 시험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신약물질 추출단계에서 벽에 부딪쳤다. 원료 1g을 추출하는데 23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6개월의 세월이 흘렀다. 비용도 1억원이 넘게 들어갔다. 자연히 경제성 문제가 대두됐고 사내에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 여파로 같이 연구하던 연구원들도 모두 좌절감에 빠졌다. 그는 궁지에 몰렸다. 그렇잖아도 회사 지원으로 서울대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조지아대에서 연수를 받아 "20여년간 교육만 받다 말거냐"는 농담이 들려 맘고생이 심하던 터였다. "그 때가 고비였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는 주저앉을 수 없었다. 97년2월.설 연휴를 앞두고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마침내 추출물 생성단계를 크게 줄이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그 때 실감났지요" 당시 선임연구원이었던 그는 김정우 연구소장(현 사장)에게 달려가 '설날 선물'을 보고했고,김 소장은 연구원들을 포장마차로 데려가 소주를 나눠 마시며 파이팅을 외쳤다. 이후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은 순조로웠다. 마침 미국 생명공학회사인 알자(ALZA)사의 요청으로 기술 이전 계약까지 맺어 해외시장 진출의 길도 열렸다. 이후 알자사와 존슨앤드존슨이 합병하면서 기술이 사장될 수 있는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존슨앤드존슨이 종근당의 기술을 베스트 프로젝트로 선정,연구가 급진전되면서 암세포에만 약효를 발현하는 '스텔스 리포좀'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가끔 외국회사들이 한국의 기술을 사들여 경쟁의 싹을 잘라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기술을 통째로 판 건 아니지만 세계적 신약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회가 막힐까봐 내심 긴장했지요." 안 소장은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입하면서 기다려준 회사 경영진과 FDA 승인을 위해 미국에서 뛰고 있는 홍청일 전임 연구소장 등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간의 고생에 대해 그는 "연구활동이 재미 없으면 어떻게 견뎠겠느냐"며 "본격적인 연구활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글=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