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그 황산벌 전투에서 우리의 전략전술적인 거시기는 한마디로 머시기헐 때꺼정 갑옷을 거시기헌다. 바로 요거여.알것제?"(계백) "니들 다 들었제? 거시기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때까진 총공격은 절대 몬한다카이."(김유신)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제작 씨네월드)은 사투리를 영화의 양념이 아니라 주재료로 내세운 역사 코미디다. 서기 660년 백제 계백과 신라 김유신이 벌였던 황산벌 전투가 작품의 소재다. 당시 인물들이 지역 사투리를 썼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한국사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를 유머 넘치는 이야기로 꾸몄다. 또 현대 영·호남 지역갈등을 풍자한 정치우화적 색깔도 입혔다. 이재용 감독의 사극 '스캔들'이 조선시대 상류층의 어투를 사용한 것과 달리 '황산벌'은 현대의 영·호남 사투리를 그대로 쓰고 있다. "와 이리 덥노"(유신) "겁나게 덥구마이"(계백) "그라고 닌 내일까지 (암호를) 못 풀면 내 손에 디진데이"(계백) 이 영화에서 사투리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극중의 작전 전개와 이야기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오늘날 영·호남간 대립과 반목의 뿌리를 짐작케 한다. 특히 호남지방 사투리 '거시기'란 말은 예닐곱 번이나 다른 의미로 쓰이면서 폭소를 자아낸다. 당 태종과 연개소문 김춘추 의자왕이 다른 언어와 사투리로 진행하는 4자 회담은 오늘날 북핵문제를 둘러싼 6자 회담을 연상시킨다. 당 태종이 고구려와 백제를 '악의 축'으로 선포하는 모습도 미국 부시 대통령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카메라는 계백과 김유신 양측에 모두 연민 어린 시선을 던진다. 결전에 임하는 양측은 승패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영웅들이다. 그러나 사투리를 통해 넘쳐나던 생기와 활기는 전쟁으로 일시에 사라지고 만다. 박중훈과 정진영 오지명 이문식 등은 코미디 식의 튀는 연기가 아니라 극의 흐름과 역할에 맞는 절제된 연기를 선보인다. 역사적 사실을 패러디하면서도 진실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노력도 돋보인다. 다만 4자회담 등 일부 장면들은 연출 의도가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드러남으로써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한다. 17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