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노무현 대통령은 '공식일정'없이 지냈다. 관저에서 13일로 예정된 국회 시정연설을 다듬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오늘은 무슨 일이 없을까"라며 혹시 있을지 모를 '돌발상황'에 대비하는 분위기였다. 이전에는 정부의 어떤 기관보다도 예고된 대로 일정이 진행되던 곳이 청와대다. 과거 청와대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최고 사령탑으로,가장 안정된 모습을 보였던게 사실이다. 국가안보와 국제정세,사회상황과 시장의 움직임과 관련된 갖가지 정보를 가장 빨리 확보하고 관계기관과 상의,대응책을 지시해야 할 사람이 대통령이다. 요즘 청와대 담당기자들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지나"라며 긴장하고,심지어 걱정하는 지경이 됐다. 지난 주말을 돌아보자.11일 토요일,대부분 신문기자들이 쉬는 날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불과 한시간도 여유를 주지 않고 '긴급기자회견'을 한다는 비상연락을 했다. 바로 전날 대통령이 예고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했는데 또 무슨 일인가. 가슴 조이는 심정으로,넥타이를 움켜쥔 채 엑셀러레이터를 밟고서야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들의 사표는 모두 반려한다"는 발표를 들어야 했다. 10일도 마찬가지.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10분 전에야 통보됐다.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재발방지 정도 아닐까"라는 기자들의 이런 예측과 달리 메가톤급폭탄이 터져나왔다. 참모들조차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충격파는 강했다. 그 이틀 전인 지난 8일에도 노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났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아세안+3'정상회의 기간동안이었다. 그때도 최 전 비서관에 대한 질문은 나왔다. "내용을 잘 모르니 국내에 가서 얘기하자"며 미소와 함께 여유를 보였던 노 대통령이었다. 나흘간 세 차례 기자들과 만났고,그 중 두 차례는 예고 없이 비상을 걸었다. 영국의 정복경찰은 좀체 뛰지 않는다고 한다. 가급적 천천히 걷고 부드러운 얼굴을 한다.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측가능한 행정,예상 가능한 사회가 그립다. 허원순 정치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