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재신임 투표, 빠를수록 좋다..洪準亨 <서울대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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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이었지만 이제 재신임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정치현안이 돼 버렸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천금같다는 사실이 새삼 증명된 셈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을 국민에게 묻겠다는 것만 정해졌을 뿐, 헌법상 재신임을 물어 대통령의 진퇴를 결정하는 것이 허용되는지,언제 어떤 방법으로 재신임을 물을 것인지, 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반면 재신임 폭탄선언이 가져올 단기 효과는 매우 확실하다.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약화와 정국불안이 그것이다.
재신임발언 직후 내각과 비서진들의 일괄사표 제출,대통령의 즉각 반려,국정안정을 위한 기강확립 등 일련의 과정들은 사태의 당연한 추이였을지라도 그것으로 국정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국무위원이나 비서진조차도 솔직히 좌불안석의 감을 떨치지 못한 모습이다.
대통령 자신이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의 공백이나 누수는 없을 것임을 애써 강조했지만, 그렇게 해본들 국정 리더십 쇠퇴라는 자연적 현상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고,국정불안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재신임을 묻기 위해 헌법 72조의 규정에 의한 국민투표를 할 수 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또 재신임 국민투표의 헌법적 허용성이 의문시되는 가운데, 대통령이 사임한 후 보궐선거에 출마해 재신임을 물을 수 있다거나, 의원내각제 개헌이나 이라크 파병 등 국가정책에 대한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아예 대통령이 통합신당에 가입하도록 하고 내년 총선에서 통합신당의 지지도와 자신의 재신임을 연계시켜 총선결과에 따르도록 하자는 주장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헌법논쟁과 상관없이 대다수 국민이 국민투표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성격의 국민투표는 헌법 72조가 예상하는 국민투표가 아니고 따라서 국민투표법에서처럼 투표권자의 자격, 투표의 방법, 국민투표관련운동, 그 실시와 결정의 방법, 절차도 정해진 것이 없다.
그러므로 재신임 국민투표는 그 명칭이 무엇이든, 법적 구속력이 아닌 정치적 의미를 가진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할 수는 있지만,그 구체적인 방법과 일정 등에 관해서는 여야 또는 주요 정당들 사이의 합의형성이 필수적이다.
특히 누구나 공정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룰과 기준, 절차 등을 내용으로 한 특별법을 제정함으로써 국회로 하여금 대통령의 그와 같은 의사형성과정에 협력하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안이다.
물론 특별법을 제정한다고 하더라도, 헌법이 예상하지 못한 이러한 유형의 재신임 국민투표를 상설제도화할 것인지, 이를 헌법상 가능케 하기 위하여 또는 그 허용성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헌법개정이 필요한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대안없는 신임투표는 대통령제와 잘 부합되지 않고,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듯이, 남용의 위험이 크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국민투표의 허용여부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재신임 정국이 장기화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경솔하게 서둘러서는 안 될 일이지만,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재신임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신임 부결시의 더 큰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을 물을 시기에 관해서 국정 공백과 혼란이 가장 적은 시점을 선택할 것이고, 시간을 끌진 않을 것이며, 총선 전후까지는 신임을 받을 생각임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폭넓은 여론수렴과 각 정당과의 협의를 통해 가능한 최단시일내에 투표 일정과 방법, 절차 등을 담은 대안을 제시해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고 정치적 예측가능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재신임의 시점은 '국정 공백과 혼란이 가장 적은 시점'이어야 하겠지만, 빠를수록 좋고, 특히 가능한 한 가장 이른 시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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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