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달라진 한국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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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TV 브라운관을 사 보내라는데 일본 메이커가 통 팔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우리 기술력을 못믿겠다는 거지요. 그래서 첫 구매한 것이 그 회사 계열사가 만드는 접착제였습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대일 수출전선에서 보낸 일본 삼성의 정준명 사장.삼성그룹의 일본 현지법인을 총지휘하는 그가 최근 옛 일을 되돌이키며 잠깐 감상에 잠겼다.
도쿄 도심 한복판의 록폰기에 새로 지은 사옥의 준공식을 이틀 앞두고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집 구하는데 애 먹은 것은 기본이고 별 일을 다 당했지요.마늘 냄새 난다고 타고 가던 택시의 기사가 차를 멈추고 내리라고 하질 않나,한국 신문이나 잡지를 지하철에서 꺼내 볼라치면 주위 시선이 이상하게 변하질 않나…"
한국에 대한 편견과 깔보기 흔적이 짙게 깔려 있던 70년대와 지금을 비교하면 일본 속의 한국 위상이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가 더 절감하는 것은 이같은 변화보다 일본 기업들의 '확' 바뀐 태도다.
"일본 대기업 임원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힘들더라고요. 90년대 초반만 해도 중간에 다리를 놓지 않으면 제대로 만날 수 없고,그나마 복도에 선 채로 잠깐 인사만 나누기 일쑤였지요."
하지만 이제는 고위 임원들 간의 교류는 물론 제휴·합작 이야기도 수시로 오갈 정도로 한국을 보는 일본 재계의 눈이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그의 말에 비친 일본 기업들의 바뀐 태도는 일부에 한정된 것일지 모른다.
삼성이라는 한국의 대표 기업에 따르는 '프리미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한국의 경제적 위상 제고와 기업들의 약진이라는 외형적 성과가 깔려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과 일본 기업이 경제라는 철로 위를 거꾸로 달린 동안 한국 기업들이 세계무대에서 거둔 성과가 시각을 바꾼 씨앗이 됐다는 것이다.
"일본에 진출해 있는 전체 외국계 기업 중 외형 6위에 올라 있습니다. 물론 아시아계 기업으로는 1위고요."
일본 삼성의 신분 변화는 폐쇄적이고 메마른 타국 시장일수록 힘과 실력을 키운 기업만이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