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결벽증인가, 고도의 정치적 승부수인가.' '재신임 발언'으로 정치ㆍ사회적으로는 물론 경제계에까지 엄청난 충격을 던진 노무현 대통령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며, 노림수는 어떤 것인가. 재신임을 묻는 방식에 대한 청와대의 생각이 국민투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가운데 각 정당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사상 초유로 국민투표가 시행될 것인지와 그 시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일에 이어 11일 연 이틀간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가능한 한 조기에,국민들로부터 직접 재신임을 묻겠다"는 방침에도 불구하고 가뜩이나 이해관계가 4색으로 나뉘어진 정치권이 이 문제를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도 총선과 연계시키고 있어 자칫 공론만 무성한 채 성사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총사표 반려는 국정수행 의지 =11일 긴급기자회견을 자청한 노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과 내각 양쪽에서 사표를 표명했는데 이에 대한 입장과 10일 재신임 문제 이후 여러 곳에서 국정혼란과 중단을 우려하는 견해가 있어 이를 정리하기 위해 기자들을 만나자고 했다"라고 밝혔다. 사표 처리와 관련, 노 대통령은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이 대통령 개인의 문제(도덕성)와 정국 상황(사면초가로 압박당함) 때문이지, 참모들의 잘못이 아니다"며 "지금보다 더 열심히 국정의 중심을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사표는 즉각 반려했다. 노 대통령은 연 이틀 밝힌 이같은 입장을 13일 대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언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발 더 나아가 정부의 국정운영 전반과 장기 개혁과제, 경제 민생 노사 시장개혁 인사 정치개혁 등 당면 현안에 대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설명하고 이를 위한 법안처리에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달라고 부탁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중도사퇴도 감수한다 =국정수행 의지를 보였지만 최악의 경우 중도사퇴도 불사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노 대통령은 11일 "제 관심사는 대통령 한 사람의 재신임 여부보다 한국정치가 제대로 가느냐, 안 가느냐의 문제"라며 "대통령 한 사람이 중간에 희생하더라도 한국 정치가 바로 갈 수 있으면 임기 5년을 다 채운 것보다 더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고 결과 여하에 따라선 책임지고 물러날 수 있다는 사실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변화의 전기가 될 수 있다"며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며 싸움을 계속하는 것보다 명쾌하게 정국을 정리하는게 훨씬 더 정국안정에 도움이 된다"고도 말했다. ◆ 문제는 신당세력과 내년총선 =노 대통령의 속내가 어느 쪽이든 각 정파로부터 순수성을 의심받는 것은 '노심'(盧心)을 등에 업은 정파가 내년 총선을 위해 뛰고 있고, 재신임이 총선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반대파들은 "재신임 세력을 자연스럽게 결집해 총선에서 통합신당 및 노 측근 정파들을 지원하는데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거나 "국정의 안정을 내세워 표몰이 하려는 것 아니냐"며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보내고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와 관련, 일단 정책과 연계시키지 않을 경우 위헌소지가 있다고 보고 정치개혁과 연계시키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