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겠다. 여러가지 추측과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말 무모하게, 쉽게 결론을 내린 게 아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최도술 사건에 대한 보도를 봤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그 허물이 드러나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당장 한국에 돌아가는데 국민을 어떻게 볼까. 국정연설이 예정돼 있는데 그 준비했던 많은 말들이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국무회의 주재하면서 옳은 소리, 바른 소리 해야 하는데 무슨 낯으로 옳은 소리 바른 소리 할 수 있을지 참으로 참담했다. 앞으로 진행될 과정을 눈감고 생각해 봤다. 지난날 안희정, 노건평, 이기명 장수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문제들에 관해 자랑할 일은 아니나, 그 문제라면 큰 부끄러움 없이 감당할 수 있었다. 정말 감당하기 힘든 공세에 시달렸지만 감당할 수 있었다. 제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선 제가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 스스로 양심의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일로 끊임없는 논란과 보도가 이어질텐데 이 상황을 두고 어떻게 국정에 전념하고 에이펙(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가서 세계적정상들 만나 무슨 떳떳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수사 결과 사실은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밝혀질 때까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저는 이것이 국정의 혼란을 넘어 마비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저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매우 취약하고 국민 지지도 매우 낮지 않느냐. 여소야대 정치를 정말 모범적으로 실현해 보고자 했는데 부덕한 탓에 성공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렇게 해선 대통령이 제 할일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날 대통령들이 야당의원 빼오고 정계개편을 한 심정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저는 그렇게 할 수도, 할 힘도 없는 것이 명백하지 않느냐. 언론상황도좋지 않다. 지역정서도 좋지 않다. 저는 호남인도 아니고 영남인도 아니다. 경계위에 서서 공격을 받는 이런 정치적 토대 위에서 대통령이 일하려면 양심에 부끄럽지 않고 떳떳해야 어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할 텐데 지금으로선 자신이 없었다. 이 대로는 4년을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제게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불행이 있더라도 우리 정치를 바꾸는 조그마한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나마 제 할 몫을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 직을 걸고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살려보고자 했다. 이 점을 받아들여 달라. 이 결단에 대한 잘못과 허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같은 자성의 결단을 계기로 우리 정치가 한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헌법상의 국민투표 요건에 대해선) 국가안위에 대한 개념을 폭넓게 해석하면 될 것이다. 과거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중간평가 재신임을 요구한 바 있으므로, 그리고 저의 재신임 제안이후 즉시 재신임받아야 한다고 했으므로 합의가 쉽게 이뤄지리라 본다. 정책을 결부시키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렇게 안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정책과 결부하지 않고 재신임 묻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혹시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서 아울러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 요구가 있으면 별개로 묶어 진행하더라도 재신임을 묻는 게 좋겠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