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한 '내재적 접근론'의 허구..申一澈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북한계 재독 사회학자의 친북정치공작 문제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법 심판이 있을 것이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다만 지난 80년대 이후 국내서 발표된 송두율 교수의 북한체제 '내재적 접근'이 젊은이들의 지적호기심의 대상이 된 점에서 그 북한관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우면 모든 것이 잘못된다는 교훈을 송두율씨의 논조에서 느끼게 된다.
73년 그가 북한 노동당에 '통과의례'로 입당했다고 하나,그 뒤 그것이 의미있게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는 변명과 달리,구사회주의 잔재인 북한체제에 대한 체제옹호론이 신조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의 자유시민들이 환호하는 속에서 그는 참담한 심정을 솔직히 토로했다.
"1989년 가을, 예상치 못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가히 세계사적인 전환을 맞이했다. 나의 그때 심정은 어느 글에서도 썼지만 남의 자식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의 자식은 입시에 떨어진 것 같은 씁쓸한 느낌이었다."(송두율, '역사는 끝나는가','당대' 1995년 p.376)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구사회주의 붕괴에 대한 송씨의 심경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그의 스승 하버마스는 '인식을 인도하는 관심'의 이론에서 실증적 사실보다 그것을 보는 '관심'이 선행한다고 했다.
송씨는 이데올로기적 관심으로 인해 '고난의 행군'기의 북한의 연명전술에 대해서도 사회과학적 진실을 외면하고 친북적 관심의 당파성으로 북한체제 옹호의 '내재적 접근'론을 견지해왔다.
송씨가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내재적 접근'론은 북한을 북한체제의 특수한 독자성으로 보라는 것으로 그의 창작이 아니다.
그 원조는 70~80년대 동독체제를 옹호한 동독연구 사회학자 루츠(Ludz)(1979년 9월2일 별세)와 그 추종자들이다.
루츠파는 동독통치의 내재적 연구를 위해 동독사회에서 인터뷰,현지조사,신빙성 있는 통계도 만들었다.
그 결과 '비록 반체제적 결론을 내놓지는 못했으나 동독의 붕괴,흡수통일된 동독시민들의 의견,행위패턴을 알 수 있는 자료적 가치는 인정된다'는 동정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송씨의 경우는 루츠파와 같은 북한사회조사, 여론조사, 현장조사 등 사회학적 조사자료가 없다.
북한에는 여론조사, 인터뷰,현장조사 등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고 여론조사를 한다해도 수령 1백% 절대지지라는 결론이 이미 나와 있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1990) 등을 살펴보아도 사회조사 흔적이 없다.
북한 사회의 연구접근 자료는 북한당국이 주는 사상 교양·선전문서 뿐이다.
따라서 그의 북한 '내재적 접근'은 북한 통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의 안경으로 북한을 보라는 것이다.
이는 김 부자 통치이념의 안경으로 북한의 특수성을 인정하라는 것이지,'내재적 접근'은 아니다.
그의 '내재적 접근'은 황장엽 선생 서울행 이전의 '주체철학'을 해설하는 주체사상의 '전도사'에 불과하다.
송씨는 신의 존재문제에 대한 칸트의 '안티노미'(이율배반)논증을 안다면 북한 내부에 대한 사회학적 조사 연구에는 '불가지론'(不可知論)으로 대치함이 마땅하다.
송씨는 북한의 인민아사,경제총파탄까지 외면하면서 세계 12위의 남한경제번영과 민주화된 한국에 대한 내재적 접근에는 인색했다.
그의 '한국모델'론은 신흥공업국의 경제발전을 말하면서 자본과 노동의 갈등 등이 내재하여 '북한 모델'보다 못하다고 깎아내렸다.
그의 논저에 북한체제의 정치악에 대한 비판이 전혀 없다는 것은 정치생명의 문제이므로 함부로 강요할 것이 못된다. 북한체제에서는 육체적 생명은 부모가 준 것이지만 정치적 생명은 수령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년전 가수 현미씨 가족이 북에 남겨놓고 온 막내여동생과 중국에서 상봉했다.북한으로 돌아가는 동생에게 오빠가 한 마지막 당부가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찡하게 해주었다. "네가 돌아가면 거기에 충성하고 잘 살아라." 송두율씨에게도 '통과의례'로 해주고 싶은 말이다.
남과 북의 경계인이란 헛소리는 접어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