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를 대리해 국제외교무대에서 각광을 받았다. 시라크 대통령은 17일 오전 열린 2차 실무 정상회담에서 폐막 성명 문안을 최종확정하는 과정에서 슈뢰더 총리를 대신했다. 한 국가의 원수가 다른 나라 최고 지도자를 대리하는 것은 EU 사상 처음으로 슈뢰더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에 참석했다가 중대 노동개혁안의 의회 표결을 앞두고 16일 저녁 귀국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17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슈뢰더 총리의 '대변인'역할을 한 뒤의 소감을 묻자 "그를 대리할 수 있어 너무 기뻤다"며 "슈뢰더 총리가폐막 성명 조정 때 자신의 입장을 대신 밝혀줄 것을 내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반대의 경우를 상정해 다른 EU 정상회담에서 슈뢰더 총리에게대리를 요청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하다"며 "유사한 상황에서 우리는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는 "우정과 신뢰"의 표시라며 우리는 EU 문제에 관해 "같은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대변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기자 회견에서 이례적으로 독일 통역을 동반해 독일 보도진의 질문과자신의 답변을 불어와 독일어로 통역하게 배려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주관한 순번 의장국인 이탈리아에 2차 실무정상회담 때 자신의 바로 옆자리에 슈뢰더 총리의 정치담당 보좌관인 라인하르트 실베르베르크의 자리를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슈뢰더 총리를 대리하는 과정에서 만의하나라도 착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한 것. 시라크 대통령은 "그에게 의자를 갖다 달라고 부탁했는데 의장국인 이탈리아가매우 공손하게 그렇게 해줬다"며 "그를 존경하기 때문에 (그의 옆에 앉아) 매우 행복했다"고 털어놓았다. 시라크와 슈뢰더의 '깜짝쇼'는 수많은 정상회담과 각료회담 등으로 연중 내내 '외교전'이 끊이지 않고 있는 유럽 외교가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요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는 "매우 과감한 결정"이라고 치사했으며 다른 EU 정상들도 슈뢰더 총리의 회담 불참을 용인하는 한편 시라크 대통령의 대리를 "유럽외교의 새로운 지평"이라며 환영했다. 지난 70년 동안 보불전쟁, 1.2차 대전 등 3차례의 큰 전쟁을 치렀던 프랑스와독일은 유럽내 적대관계 재발방지를 위해 출범한 EU의 창립 회원국으로 유럽통합 운동의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양국은 EU내 협력 뿐 아니라 정례 합동 국무회의, 자국에 거주하는 상대 국민에대한 이중국적 부여, 공동 해외공관설치, 국제기구에서의 공동입장 모색, 국제체육대회에서 공동 선수단 선발 등으로 협력의 내실을 다지고 있다. 유럽 대륙과 미국 사이의 중간자적 입장에서 유럽통합운동에 거리를 두고 있는영국은 프랑스와 독일이 과시하고 있는 협력관계의 성숙에 어느 나라보다도 놀랐을것이라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