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이라크파병 '공론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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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파병 논의는 가볍게 해왔고,본격적으로 논의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미국과) 비밀리에 교섭하거나 흥정한 것이 없다. 여러분에게 내놓을 특별한 정보가 없다."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 하루 전인 17일 오후3시 노무현 대통령이 시민 사회단체 및 종교계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한 말이다.
이보다 3시간 앞서 재향군인회 임원단과 오찬간담회에서도 노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의사를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룻밤 지난 18일 오전 9시 전격적으로 파병을 결정했다.
한달반 전 미국의 '폴란드형사단' 전투병 파병 요구 이후 노 대통령은 "서두를 것이 없다"며 "국민적 공론을 거쳐 결정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 왔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연일 "정해진게 없다"고만 말해 왔다.
굳이 공론화 과정이라면 재향군인회의 지지 의견과 바로 뒤이어 사회단체 등의 반대 얘기를 한차례씩 들은 것뿐이다.
오히려 청와대측은 파병 결정 전날에도 상당히 비상식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일부 신문에 보도된 '19일 출국때 파병 입장 발표' 기사에 대해서도 이 문제를 담당해온 국가안보회의(NSC) 핵심관계자들은 부인하기에 급급했다.
"추가 파병 여부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은 멀다. 기다려 달라. 미국의 요구사항 등 모든 정보는 실시간으로 제공하겠다."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 이종석 NSC사무차장 등 주요 책임자들은 수차례 정보 공개를 약속하면서 언론의 협조를 호소해 왔다.
국익을 내세운 요구였다.
시민사회단체 및 종교계와 간담회때는 거의 반대일변도인 초청자들의 발언요지를 '보도자료'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뭔가 정부내 기류 변화가 있다"는 기자들의 판단을 호도하기에 알맞은 처사였다.
과연 17일 밤에 파병을 전격적으로 결정할 만큼 특별한 일이 벌어졌는가 .그런 상황은 아닌 것이 명확하다.
그렇다면 진작 파병 결정을 해놓고도 말로만 공론타령을 한 채 요식행위로 재향군인들과 시민단체 대표를 만난 것은 아닌가.
노 대통령의 말이 하루만에 바뀐 것처럼 된 사연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허원순 정치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