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불황에도 편법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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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양(22)은 걱정이 태산이다.
'취업 별따기'를 피해 창업자금을 마련하려고 지난 6월말 다단계 판매업체인 C사에 가입한 게 탈이었다.
이익의 60% 정도를 나눠준다는 회사측 설명에 3백만원가량을 학자금으로 대출받아 정수기 등을 사들였다.
제품이 고가여서 친지ㆍ친구들이 매입을 꺼리자 김씨는 20여일 만에 탈퇴를 결정했다.
그러나 윗단계 판매원은 "소비자인 만큼 2주 이후엔 반납이 안된다"고 했다.
지난해 개정된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판매원은 3개월 내, 소비자는 2주 내에만 반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씨는 "회사가 이익배분을 약속했고 대학생 신분임에도 3백만원어치를 샀는데 단순한 소비자라며 반납을 거부한다는게 말이 되느냐"며 분개했다.
◆ 업체수 감소, 피해자 여전 =20일 일선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이후 지금까지 1백10곳이 서울에서 등록 취소된 것을 비롯 지난해 말 7백42개였던 다단계 업체는 지난 7월 말 1백65개로 78%나 감소했다.
이는 지난해 정부가 다단계업체 등록ㆍ취소 등의 일부 업무를 지자체에서 공정거래위원회로 옮기면서 △최소 자본금을 당초 3억원에서 5억원으로 △매출액 일부를 법원에 공탁하던 것을 공제조합에 예치토록 하는 등 규정을 고쳤고 최근 경기침체로 이용자가 급감한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피해 사례는 여전하다.
정부가 상품매입 철회기간을 대폭 단축한 데다 부실 업체 2∼3곳이 합병을 통해 기존 영업망을 유지하면서 김양과 유사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다단계판매 피해자 구제 모임인 안티피라미드(www.antipyramid.org)가 운영 중인 16개 인터넷 카페에는 일평균 50∼80건의 다단계 피해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안티피라미드 이택선 사무국장은 "다단계가 극성을 부린 2000, 2001년보다 민원은 줄었지만 사이트 접속 방문객은 하루 평균 1천7백건으로 오히려 늘었다"며 "법적 보호를 받는 피해사례는 줄고 보호받지 못하는 피해자는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 담당 부처는 '나 몰라라' =전문가들은 피해 사례가 증가하는 배경으로 '소비자 권익보다 공무원 편의에 초점을 맞춘 관련법 개정'을 들고 있다.
서울 YMCA 김희경 간사는 "다단계 청약 철회의 경우 개정 이전엔 무기한 보장됐으나 개정 후엔 최대 3개월로 줄었다"며 "게다가 근거 없이 판매원과 소비자를 구별해 업체들이 악용할 수 있는 소지를 줬다"고 말했다.
불법 사례가 생겨도 대처가 느려 피해자 보호는 사실상 사각지대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등록취소 등의 시정조치는 지난해 7월 공정위로 옮겨졌으나 등록 및 사실조사 등은 서울시에 있다"며 "공정위와 서울시가 따로 업무를 맡다보니 시정조치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실제 지난해 7월부터 지난 10월까지 공정위가 다단계 판매업체에 내린 시정조치는 단 4건으로 개정 이전 1년반 동안 서울시가 내린 시정조치 95건의 5%도 안된다.
YMCA 김 간사는 "다단계업의 경우 판매원과 소비자 구분이 사실상 힘들고 청약 후 성공여부를 판단하는데 1년가량의 시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할 때 판매원과 소비자의 구분을 없애고 청약철회 기간을 연장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