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회장이 대한교과서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전쟁 직전이다. 은행에서 근무하다 대한교과서 서무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전시장교로 입대했다. 복무중 그는 회사 설립자 우석(愚石) 김기오 선생의 별세 소식을 듣게 된다. 우석은 김 회장의 일가 친척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광수의 성실함을 눈여겨 보고 그를 친아들처럼 대하며 후계자로 키웠다. 김 회장 역시 우석을 스승이자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따랐다고 한다. 제대 후 회사로 돌아온 김광수는 사실 경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 전문경영인이 갑자기 사퇴하는 바람에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사장자리에 오르게 됐다.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못하겠다고 물러섰지요.하지만 주주들이 하도 권유하는 바람에 경영을 맡게 됐죠." 대한교과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해 출판업계 처음으로 주식 공모를 통해 설립됐다. 우석이 교육을 바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주위 사람들을 설득해 주주로 끌어들인 것이다. 김 회장은 취임 당시 '교육입국''출판보국'이라는 우석의 창업 유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석은 출판 입국이라는 일념으로 적자를 내고 있었던 실업계 교과서와 현대문학 발행을 중단하지 않았지요.또 자신과 가족들에게는 엄격했지만 사원들에게는 관대한 분이었습니다.직원들의 부정을 발견해도 웃으면서 회사 기둥뿌리만 안 빼가면 눈감아 주거라.오죽하면 그러겠느냐며 관용을 베풀었지요." 김 회장은 우석 선생의 뜻을 받들어 지금도 발행하고 있는 실업계 교과서와 현대문학을 최고의 자랑거리로 생각한다. 실업계 교과서는 발행부수가 적어 경영엔 도움이 안 됐지만 우리나라 실업계 교육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우석 선생이 "국가에 문예전문지가 없다는 것은 수치요,문화적 두뇌마비"라고 개탄하며 1955년 창간한'현대문학'도 문예지 특성상 창간 이래 한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경영에는 큰 부담이었으나 지난 48년동안 박경리 정을병 조정래 홍기삼 등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문인 6백여명을 배출해낸 한국문학의 산실이 됐다. 김 회장은 "사장으로 취임할 때 주주들의 첫 번째 주문이 현대문학 발행을 멈춰 달라는 것이었지만 그것만은 안 된다고 버텼다"고 회고했다. 그는 "요즘 디지털.영상 문화가 급성장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의 기본은 역시 순수문학"이라며 "적자가 나도 문인들의 소중한 활동무대인 현대문학을 끝까지 끌고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이 공익 목적의 사업을 많이 한다고 회사에 여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한편으로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련도 많았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