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시인 구상씨의 딸인 중견 소설가 구자명씨(46)가 첫 소설집 '건달'(나무와숲)을 내놨다. 책은 건달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 '뿔'과 '지도는 길을 모른다' '숲속의 빈터' 등 모두 7편의 중·단편을 담고 있다. 구씨의 소설에서 '건달'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직폭력배나 술집 기도를 뜻하지 않는다. '뿔'의 주인공이자 자칭 '건달'이라는 지대평의 표현을 빌리자면 '힘들게 노력해야 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백수나 룸펜과 유사한 말이다. 주인공은 '건달'이라는 말이 보다 클래식하다고 생각돼 누가 뭘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주저없이 "건달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그가 건달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은 출세욕과 과로로 인해 아버지와 형이 죽는 것을 보면서부터다. 대평(大平)은 이름 그대로 태평스럽고 편안한 삶을 영위한다. 그는 '육신을 힘들게 부려 해야 할 일도 없으며 무엇을 꼭 뜻한 대로 이루려고 고심할 필요도 없다'며 자신을 생산하지 않는 대신 파괴하지 않는 '평화주의자'요 '환경보존주의자'로 자처한다. 13년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실존적인 갈등과 고민에 빠진 학원 강사의 모습을 그린 '숲속의 빈터'나 혜성과 충돌해 지구가 멸망하는 가상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부부의 모습을 담은 '세계의 가을' 등 구씨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몸짓과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다운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이 생긴다. 또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만든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