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금융산업 구조조정의 완결분야로 지목받아온 투신업계에 기업 인수합병(M&A) 회오리가 불고 있다. 부실 투신사에 대한 정부의 강제 매각 조치뿐만 아니라 무한경쟁에서 밀린 낙오자들의 "자진 포기"와 몸집을 키우기 위한 선두주자들의 "덩치 싸움"도 본격화되고 있다. 투신업계는 사실상 외환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였다. 은행권이 퇴출.합병을 통해 군살을 뺀 것과 대조적으로 투신권은 정부의 방치와 난립속에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만 벌여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4년간 곪아온 상처가 터기기 직전"이라고 말한다. 특히 푸르덴셜 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가세로 새판 짜기에 돌입한 투신사 구조조정의 나아갈 방향 등을 짚어본다. -------------------------------------------------------------- ◆투신권 매물 홍수 과거 투신사에서 증권사로 전환한 한투 대투 현투 등 5개 증권사와 자회사인 투신운용사가 모두 매물로 나와 있다. 이 중 현투증권과 제일투자증권은 미국계 푸르덴셜과 막바지 인수협상을 벌이고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한투증권(자회사 한국투신운용)과 대투증권(대한투신운용)도 경영정상화 후 매각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동양그룹이 매물로 내놓은 동양오리온투자증권(동양투신)은 미국계 모건스탠리가 강력한 인수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중소형사도 예외가 아니다. 미래에셋증권이 SK투신을 인수키로 함에 따라 중소형사간 M&A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미래에셋은 22일 SK증권으로부터 SK투신운용 지분 35%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외국계 투신의 국내 시장 진출 등으로 국내 투신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고 덩치를 키우기 위해 SK투신을 인수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SK투신(자산규모 2조1천억원)을 인수하게 되면 미래에셋그룹의 펀드 자산은 7조2천억원으로 늘어나 업계 7위로 올라서게 된다. 중소형사 인수를 추진 중인 한 투신사 사장은 "수탁고 2조원을 밑돌고 있는 5∼6개사가 매물로 나와 있다"고 말했다. 대형 5개 투신을 포함할 경우 전체 투신사(32개)의 30% 이상이 M&A 시장에 나와 있는 셈이다. ◆구조조정의 배경 투신권이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은 영업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주된 원인이다. 경쟁 치열,수수료 인하,시장 축소 등으로 현재 업계 구도로는 도저히 공생(共生)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투신권은 그동안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였다. 국내 은행 수는 외환위기 전 33개에서 현재 19개로 줄어든 반면 투신사는 30개에서 32개로 오히려 늘어났다. 정부가 한국 대한 등 대형 투신사 구조조정을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형사들은 시장 입지를 강화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진입장벽(최소 자본금 3백억원에서 1백억원으로 인하)이 낮아진 데다 외국계 투신권의 진출도 러시를 이뤘다. 회사 수가 증가한 데 반해 시장은 줄어들고 있다. 1999년 8월 2백50조원에 달했던 투신사 수탁고는 최근 1백53조원으로 40% 감소했다. 증시침체와 99년의 대우채 환매 제한조치 및 SK글로벌의 분식회계,카드채 사태 등으로 투신 신뢰가 땅에 떨어지면서 고객이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투신사의 유일한 수입원인 운용수수료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운용자산의 0.5%를 넘었으나 최근 0.2%대로 낮아졌다. 펀드시장이 줄어든 가운데 수수료마저 감소하고 있어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올해 결산에서 적자 회사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투신협회 관계자는 "외국 자본 유입과 자산운용법 시행 등으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가운데 투신사들의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 업계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