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김선아는 데뷔작인 SF영화 '예스터데이'에서 살인마를 쫓는 형사 역으로 분장했지만 특별한 성격을 표출하지는 못했다. 코미디영화 '몽정기'에서 교생 역을 맡았던 그녀는 어린 제자들의 호기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순진성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그러나 신작 코미디 '위대한 유산'(감독 오상훈,제작 CJ엔터테인먼트)에서 그녀는 자신의 치부와 속내를 남성들을 향해 거침없이 드러내는 열혈 처녀로 변신했다. 온몸을 던지는 김선아의 연기는 다른 등장인물들을 압도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추 역할을 한다. '위대한 유산'은 남녀 실업자를 지칭하는 이른바 '백수'와 '백조'들이 한바탕 소동을 통해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를 찾아가는 내용을 유쾌하게 그렸다. 김선아는 탤런트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지만 오디션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장미영 역을 맡았다. 미영은 수면 위의 우아한 자태와 달리 물 아래서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백조의 속성을 강조한 캐릭터다. 그녀는 설사에 시달리며 엉거주춤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비롯 식욕과 배설 등 원초적 생리현상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취중에 구역질을 하거나 자장면을 먹으면서 욕설을 퍼붓는 장면 등이 배역의 성격을 잘 대변한다. 말하자면 미영은 화장기를 지운 여성의 맨얼굴을 상징한다. 그것은 얼핏 역겹거나 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장 진실한 모습이다. 그 진실성이야말로 상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며 사랑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제목 '위대한 유산'이란 바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사랑의 마음이다. 갑부의 소생일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출생 관련 소동이 끝나고 퀴즈쇼에 출연한 미영은 '대박' 대신 사랑을 얻는다. 미영과 상대역인 백수 김창식(임창정)과의 첫 인연은 1백원짜리 동전을 두고 벌이는 싸움으로 맺어진다. 생계에 골몰하는 무직자들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것은 비극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악착스런 삶의 태도로 웃음을 유발한다. '색즉시공'에서 보여줬던 질박하고 어리숙한 청년의 면모를 승계하고 있는 임창정은 김선아의 캐릭터에 밀려 배역이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다. 김선아의 연기가 인상적인 반면 작품의 구성과 짜임새는 느슨하다. 이 영화로 데뷔한 오상훈 감독은 앞으로 연출의 긴장도를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24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