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술, 개발만이 능사인가 .. 裵洵勳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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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대일 무역적자에 시달려 오면서 부품 소재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지 못한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왔다.
최근 일본에서 온 오마에 겐이치씨는 한국 기업이 기술 개발과 브랜드 개발에 소홀히 하고 있다면서 일본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삼성전자의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이익이 한때 동종업계의 일본 5대 회사 이익을 합친 것 보다 많은 적이 있었고 올해도 그런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오마에씨의 경영이론이 잘못 됐든가 아니면 오마에씨가 삼성전자의 전략을 잘못 이해했든가, 사실은 오마에씨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부품 소재를 우리 기술로 반드시 개발해야 하는가 한번쯤 생각해 보자.
쌀농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히 식량 안보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가 쌀농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우리 쌀 같은 쌀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 개발을 안보 때문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기업은 오히려 경쟁력을 상실한다.
세계화는 시장을 통해 많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동통신을 시작할 때 TDMA 기술이 비싸고 시장 제한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안 팔리고 값싼 CDMA 기술을 사다가 세계에서 가장 편리한 이동통신을 만들었다.
일본의 폐쇄적인 기술 개발에 대한 집념은 일본의 경제를 침체로 몰아가고 있다.
기술개발은 시장의 독점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품의 차별화를 위해서 필요하다.
독특한 상품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기술은 시장에서 구매하든가 자체 개발해야 한다.
시장에서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술을 굳이 돈을 많이 들여 자체 개발하는 것은 자본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삼성은 일본 기업들보다 자본 비용이 높았던 과거 우리 기업 환경 때문에 자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노하우가 있다.
일본이 부품 소재 수출을 안한다면 대안은 미국 유럽에 있고 삼성은 이를 가격 협상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에서 배우지 말아야 할 점은 시장에 대한 폐쇄적인 사고방식이다.
우리의 이공계가 인기가 없고 출연 연구소가 활력이 없는 이유는 기술 시장에 대한 폐쇄적인 생각을 일본에서 너무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는 후발국의 약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경제 규모도 적다.
기술개발 경쟁을 한다면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 별로 없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의 개방된 시장에서 기술 거래가 자유롭다면 기술의 보유 여부가 아니라 상품 차별화를 위한 기술의 확보 여부가 중요하다.
동북아 시장을 향한 우리 전략은 시장에 적합한 기술이 실리콘밸리에서 올 수도 있고 중국에서 또는 일본에서 올 수도 있다.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는 능력은 자금의 문제만은 아니다.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기술 활용 측면에서 뛰어나다.
이는 기업만의 능력이 아니라 적절한 소비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소비 능력과 기술 확보 능력이 복합해 경쟁력을 만든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우리의 이동통신이나 초고속망은 기업과 소비여건과 정부 정책의 오묘한 조화이다.
일본은 이런 조화를 이루지 못해 3세대 이동 통신에서,IP v6에서 시장 실패를 했다.
이런 시장 실패는 한국에 와서 만회하는 경우도 있다.
3세대 이동통신 단말기의 컬러 디스플레이가 그런 경우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오만함은 상대가 되지 않는 미국과 전쟁을 일으켜 이해하기 힘든 실패를 낳았다.
일본이 현재의 경제 침체를 벗어나는 방법은 극우파들이 옛날의 영광을 되새기는 것 보다는 맘을 열고 동북아 국가들과 대화하는 일이다.
일본은 전쟁 실패에서 국민들의 큰 희생을 대가로 지불한 뒤 자기들의 오만을 늦게 깨닫는 아둔함이 있다.
일본을 덜 배우고 우리의 정서를 살리는 우리 기업의 기개를 높이 사고 싶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기술개발보다 기술 확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