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일본의 비관세 장벽 불평을 수없이 늘어 놓아도 문서로 달라면 묵묵부답인 겁니다." 지금은 서울로 돌아가 있는 한 경제단체의 임원 K씨.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양국 공동연구회에 깊숙이 참가해 온 그의 경험담에는 두 나라 기업 문화의 차이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일본에서 한국 기업들이 겪는 비즈니스 애로를 조사,취합하는 작업을 진행하려 했지만 문서화된 응답을 얻기 어렵다는 것. 이에 반해 한국에서 활동 중인 일본 기업들은 무려 2백62건에 이르는 대 한국 비즈니스 애로를 지난해말 문서로 연구회에 제출,한국측 참가자들을 뜨끔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FTA는 한·일 두 나라 정상이 정부간 교섭 개시를 선언했지만 이미 공통의 숙제와 관심사로 뿌리 내린 상태다. 도쿄를 찾는 한국의 경제 관료와 주일 외교관들의 스케줄에서 'FTA협의'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차분히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빈틈없는 대응과 냉정한 이해득실 평가다. 한·일 FTA의 핵심은 한국의 관세 장벽과 일본의 비관세장벽을 허무는 일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경쟁 우위의 일본 공산품이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와도 이를 막을 수단이 거의 없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로 인한 공백을 노동·서비스 분야의 신수요 창출로 메운다지만 일본 시장의 문이 호락호락하게 열릴지는 미지수다. 일본이 쳐놓은 높고도 단단한 장벽은 한국이 간절히 원하는 비자 면제 문제에 일본이 수년째 난색을 표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쉽게 확인된다. FTA는 두 나라가 몸을 같이 실을 공동 운명의 배다. 그러나 꼼꼼한 평가와 준비를 뒤로 한 채 황금을 눈앞에 둔 듯 들떠 있기만 한다면 이는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FTA 체결 후 진짜 타격을 받을 곳은 중소 제조업체가 아니라 영세하면서도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한국의 유통·서비스업입니다." 도쿄대 후카가와 유키코 교수의 지적은 한국이 기대를 거는 떡조차 일본에 고스란히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