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냈다] 대한교과서 김광수 회장 (4) '국정교과서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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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5일.
황태랑 사장이 회장실 문을 열고 급히 들어왔다.
"국정교과서가 우리한테 낙찰됐습니다.산업은행 본점에 나가 있는 간부사원으로부터 막 연락이 왔습니다."
언제나 듬직한 모습이었던 황 사장이 상기된 얼굴로 낙찰 소식을 전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69년 사원으로 입사해 30여년을 '대교인'으로 근무하며 최고경영자에 오른 황 사장도 그날 만큼 기쁜 날이 없다고 기억한다.
국정교과서 인수는 김 회장이 다른 어느 일보다 애착을 갖고 추진했던 일이다.
60년대 은행관리에 들어간 회사를 와신상담하며 4년만에 정상화시키고, 70∼80년대를 거치며 자회사가 문을 닫는 등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으나 그런대로 무난한 경영을 펼쳤다.
그러나 회사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찾지 못해 고심하던 터에 국정교과서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국정교과서는 1952년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대한문교서적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돼 초등학교 교과서 생산을 전담해 왔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정부가 공기업 구조조정 차원에서 민영화를 추진한 첫 대상이 됐다.
대한교과서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궁합이 잘 맞는 회사는 없다.
두 회사가 공익을 중시하는 이념도 비슷하고,교과서를 생산하는 업체라는 공통점이 있어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에는 제격이었다.
"두 회사는 필연적으로 합병이 필요했습니다.우리가 국정교과서를 인수하지 못한다면 인수를 당해서라도 중복투자를 줄이고 기업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확신했죠."
김 회장은 40여년 전에도 국정교과서의 행사에 초대받아 이같은 소신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합병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교과서 값이 인상될 것이라는 우려와 공기업에서 일반기업 사원으로 신분이 바뀌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정교과서 직원들의 반발이 컸다.
합병 과정에서 회사를 떠나는 임직원도 생겼다.
"최악의 경우 인력과 시설을 포기하고 교과서 판권만 받아오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김 회장은 합병에 반대하는 직원들을 보고 이런 각오까지 다졌다고 한다.
김 회장은 99년5월 국정교과서를 합병한 후 직원들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문화적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경영자와 사원간 대화 자리를 많이 만들었다.
꾸준히 회사의 비전을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직원들도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이와 함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중복 부서를 통폐합하고 분야별 책임경영제와 목표관리제를 도입,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높였다.
또 공정을 재배치하고 직능교육 등을 강화하자 생산성과 품질이 크게 향상됐다.
이에 따라 교과서 값이 내리고 공급시기도 1주일 이상 줄어드는 효과를 보게 됐다.
특히 재무제표상의 합병효과는 두드러졌다.
합병 1년 후 영업이익이 1백27%나 늘어나자 사기가 오른 임직원들 사이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