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큰 장이 서면 10년은 먹고 산다.' 증권업계에 회자돼온 일종의 '격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같은 논리가 옛말이 됐다. 증권사들이 몰려있는 서울 여의도엔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 한파가 다시 불어닥치고 있다. 상당수 증권사가 매물로 쏟아져 나왔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같은 상황을 반영,증권업계 구조개편의 필요성을 외치는 주장이 봇물을 이룬다. 지난 23일 증권연구원 주최로 열린 '증권산업 구조개편' 세미나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전문가는 "이대로 가다간 5년 후엔 모두 망할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우려를 나타냈다. 지금처럼 위탁매매 위주의 영업구조를 고집한다면 5년 후에도 이익을 내는 증권사를 찾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업계 생존을 위해 증권사 3개중 1개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이 전문가는 말했다. 적자 기업이 속출하는 업계 구조를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재편하지 않고서는 한국 증권시장이 외국계 주도로 넘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동안 증권업계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누구나 얘기해왔고 공감하는 대목이었다. 문제는 '과연 증권사들 스스로가 구조조정에 동참할 의지를 갖고 있는가'에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두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얘기하고 있지만 막상 자기 증권사가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보는 CEO(최고경영자)는 한명도 없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금융=은행산업'으로만 보는 당국의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는게 증권업계의 주장이다. "증권산업의 취약성은 근본적으로 당국의 은행위주 정책이 낳은 결과이며 증권업을 주식중개업으로 받아들이는 한 업계의 선진화는 기대할 수 없다"는 증권사 사장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정종태 증권부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