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돈웅(崔燉雄) 의원이 지난해 대선직전 SK로부터 받은 비자금 100억원은 모집과 수금, 관리, 배분과정이 모두 베일에 가려있다. 그러나 최 의원의 발언과 당 관계자들의 전언 및 검찰수사 결과 등을 종합해보면 대충의 윤곽을 짐작해볼 수 있다. ◇모집 = 지난해 10월말 중앙당 후원회를 앞두고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 주재로 당내 중진들이 대책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이 회의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나오연(羅午淵) 후원회장 등 참석자들은 "이 회의는 공식적인 후원활동이지 비자금을 논의하는 자리는 아니다"고 강력 부인하고 있어 이 자리에서 SK비자금 문제가 논의됐는지는 현재로선 알수 없다. 어쨌든 이 회의에서 중진들은 각자 후원금 납부를 독촉할 5~6개 기업을 정했고,최 의원도 독려전화를 했음을 시인했다. 하지만 SK 등 몇몇 대기업에 대해서는 별도의 루트를 통해 공식적인 후원금외거액의 비자금을 줄 수 있는지 의사를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은밀한 작업은 실무적으로는 재정국 직원들이 맡았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으나 전체과정을 총괄한 인물이 누군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최소한 김영일 사무총장 이상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고 최 의원이 당시 재정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비중있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본인의 작품이라는 주장도 나오고있으나 여러 정황으로 봐 당시 당 지도부에게까지 보고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가 개입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측근들은"이 전 총재는 돈에 대해서만큼은 결백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으나 "100억원이라는 거액이 드나들었는데 이 전 총재가 전혀 몰랐겠느냐"는 관측도 적지 않다. ◇수금 = 최 의원이 자신의 동부 이촌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SK㈜ 김창근(金昌根) 구조조정본부장으로 부터 한번에 20억원씩 5차례에 걸쳐 돈을 건네받는 과정은 첩보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은밀하고 신속하게 진행됐다. 강원지역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주로 강릉에 머무르고 있던 최 의원은 SK측으로부터 "돈이 준비됐다"는 연락을 받으면 곧바로 서울로 이동했고 도중에 휴대폰으로 김본부장과 수시로 통화를 하며 자신의 위치를 통보, 최 의원과 김 본부장은 거의 동시에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본부장은 매번 혼자 나타났으며 모자를 푹 눌러써 얼굴 노출을 최대한 피했다는 후문이다. 김 본부장이 돈뭉치가 담긴 쇼핑백을 최 의원의 엔터프라이즈 승용차에 실어놓고 가면 2분도 안돼 재정국 직원들이 사전에 알려준 번호판을 단 승합차를 타고 나타나 이 돈을 고스란히 옮겨갔으며 전과정이 불과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게 당관계자의 전언이다. 최 의원은 이 때문에 돈을 나르는 재정국 직원들과 인사도 거의 나누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으며 재정국 직원이 누군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안의 비중으로 볼 때 국장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관리 = 재정국 직원들에 의해 옮겨진 돈다발은 `남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필수요건때문에 은밀한 제3의 장소에 보관됐을 가능성이 높다. 또 보관장소를 아는 사람도 자금관리 책임자인 김영일 사무총장과 이재현 재정국장 등 극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 최고사령탑인 이 전 총재는 물론 서청원(徐淸源) 전 대표조차 보관장소만큼은 몰랐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또 100억원이란 거액이 한꺼번에 지출됐다기 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썼으며 이 돈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현금형태로 유지됐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돈은 음성자금인 만큼 정식 회계장부에 기록되지 않았고 중앙선관위 신고때도 빠졌다. 하지만 전체적인 상황파악을 위해 별도의 장부에 입.출금 내역이 기록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 당 후원회장인 나오연(羅午淵) 의원은 "비자금이 당에 들어왔다면 별도의 장부로 관리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용처 = 대선자금으로 대부분 소화됐다는 게 최 의원 등 당 관계자들의 얘기이나 개인유용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상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의 강도높은 수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문제의 SK 비자금은 다른 정치자금과 함께 섞여 집행됐을 가능성이 있어 100억원의 용처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가장 유력한 용처로는 당 직능특위에 대한 지원과 당의 골간조직인 지구당에 대한 선거비용 지원이 거론된다. 우선 지구당의 경우 대선과정에서 선관위의 국고보조금 배분액 이외에 수시로 수백-수천만원의 현금이 지원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부 지구당 위원장은 "나한테는 1천만원밖에 안왔다"고 볼멘 소리를 할 정도다. 이와 관련 박주천(朴柱千) 사무총장은 "100억원이 큰 돈이긴 하지만 227개 지구당으로 쪼개서 배분하면 지구당별로 4천400여만원 정도"라면서 "일선에서는 자금출처를 모른 채 사용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직능특위도 대선당시 한나라당이 득표율 제고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직능특위는 기본적으로 대선을 위해 급조된 조직이기 때문에 상당한 자금지원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때 우리당 소속 의원 수명을 빼갔고 우리당에 남아 있던 의원중 몇사람은 한나라당과의 합당이나 한나라당 후보 공개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면서 "한나라당이 검은 돈으로 자민련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있었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민영규기자 youngky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