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4 09:10
수정2006.04.0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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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대학에 다닐 때의 일이다.
목회자의 길을 염두에 뒀던 나는 혼자 이스라엘의 여리고 지방으로 성지순례 여행을 떠났다.
홑몸이라 거추장스럽지 않아 좋다 싶었는데 사단이 생겼다.
여리고에서 사해를 다녀오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 차편을 알아보는 과정에서였다.
왕복 경비가 1백달러면 충분하다고 들었는데 1천달러를 내라는 게 아닌가.
험상궂은 사람이 협박조에 가깝게 굴어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한참을 차에 타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그를 정시하고 있는데 그가 뜬금 없이 "태권도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별 생각 없이 "그렇다"고 했더니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그가 왜 그랬는지 궁금증은 곧 풀렸다.
시내 사거리에 나가보니 가슴 뭉클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태권도 영화 간판이 걸린 극장 앞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좀 엉뚱한 사례일지 모르지만 이런 게 바로 '문화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들은 태권도 영화에서 한국이란 나라를 빙산의 일각이나마 경험했을 것이다.
억지로 설명하려 들지 않아도 그들은 눈과 귀를 통해 자연스레 한국을,그리고 한국 사람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이제 우리의 비즈니스 무대는 지구촌 전역이다.
하지만 한국이란 나라를,한국 기업을 잘 모르는 곳에 물건을 제대로 팔 수 있겠는가.
적어도 거부감은 갖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자칫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게 마련인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지금 '문화 마케팅'은 중요한 무기로 떠오르고 있다.
비즈니스 세계는 물론 예술과 학문분야에서도 문화의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고 적응하는 일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한달에 한번씩 팀장급 이상 임직원과 회의실에서 각국의 영화를 보고 소감과 느낌을 공유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
영화는 비교적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다 인생과 문화가 녹아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들리는 '문화 경영'도 접근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우리가 영화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화의 보편성과 다양성,그리고 상대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세계화의 첫걸음이 아닐까.
특히 세대교체라는 사회·경제적 흐름 속에서 젊은 세대가 주도하고 있는 문화산업의 발전이 기업의 국제활동을 측면 지원하고 나아가 국가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리라고 믿는다.